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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도로의 운전자는 왕!
2012-01-25   이호선

숲 속을 지키며 살고 있는 부쉬 맨들의 전통가옥

고요한 아침의 숲 속을 천천히 걸어 나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변변한 마을은 없지만 도로변을 따라 끊임없이 하늘을 찌르는 뾰족한 그들의 초가집이 이어지고 적지 않은 아이들의 울음소리, 아우성 소리가 숲 속을 뒤흔든다.
모든 집마다 결코 크지 않은 옥수수 밭이 있고 작은 텃밭에 소량의 채소나 과일 등을 농사지으며 살아가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하기 짝이 없는 많은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어 아프리카는 결코 메마르고 황폐한 땅이 아니고 우리와 거의 다를 바 없이 풍요로워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계획적이거나 효과적인 재배법보다는 그저 뿌려놓고, 때 되면 거두어들이는 자연농법을 일관하고 있는 듯하다.
도로변에서 가끔 토마토나 수박 등을 사먹어 보지만 정말 맛이 없다. 그저 토마토이고 수박일 뿐이다. 이런 과일노점상 만나기도 쉽지 않기에 이들을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정지해 토마토를 위에 쳐 넣는다.
이들 부쉬맨(Bushman), 특히 여자들의 하루는 상당히 바쁘다. 그들의 삶 자체가 모두 자연에 의존한 것이기에 그들의 초가지붕이나 깔개 등을 엮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로변을 따라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사람 키의 두 세배나 되는 억새풀들을 잘라 묶어 집에 쌓기도 하고 우물이나 펌프가 없는 집은 수백m 내지 수km 떨어진 동네 우물이나 펌프장에서 물을 길어 와야 하고………
반면에 남자들은, 숲 속에 쓰러진 큰 나무들을 모아 숯을 만들고 자루에 넣어 도로변에 세워놓아 지나가는 운전자들에게 팔기도 하고 있지만, 상당히 한가한 편이다. 그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엄마를 돕는 것은 그들이 넉넉하게 낳아놓은 어린 새끼들이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은 이 곳에서는 전혀 근거 없고 가당치 않은 말이 된다.

마을이 있으면 또한 반드시 있는 것이 학교이다.
이 곳 사람들의 교육열 또한 여느 지구촌의 그들과 한치의 다름없이 대단히 뜨겁다.

도로변에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흑인과 동물들의 모습을 빚은
토기나 목각의 민예품을 파는 곳이 속출한다.

이미 건기에 접어들어 도로주변 대부분의 진흙 땅바닥은 바싹 말라있지만
이렇게 도도히 흐르고 있는 강들이 있는 한, 이곳은 명실상부한 생명과 축복의 땅이다.

누군두(Ngundu)를 지나고 시티(City)에 상당하는 마빙고(Masvingo)를 40km 정도 남겨놓고 물이 흐르고 있는 높은 다리가 나의 발걸음을 묶는다. 도로를 내려가 깊은 풀 속을 헤치고 다리 밑으로 진입하기 위해 상당한 노고를 지불한 끝에 겨우 다리 밑에 자리를 잡고 주저앉아 긴 한 숨을 몰아 쉰다.
물이 흐르는 다리 밑은 최고의 야영지이나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도로에서 다리 밑으로 진입하는 것은 종종 당치도 않은 다른 얘기가 되곤 한다.

해가 져버려 물이 차갑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두 말의 여지가 없이 물 속에 첨벙 온 몸을 던진다. 낮에는 태양이 뜨거워 온 몸이 녹아 내릴 듯 기진맥진의 나날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렇게 강물 속에 몸을 한 동안 담그고 있으면 놀라울 정도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빨래까지 여유롭게 해치우고 나면 기분은 하늘을 난다. 다리 밑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총총하다. 아무리 야단법석을 쳐도 결코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물소리는 자장가가 되고 이내 나의 기억에서 아득히 멀어져 간다.

다리 밑에서의 비에 젖은 야영.
"오늘, 나는 비에 젖고, 외로움에 젖네!"

온 몸이 물 속에 빠져드는 불쾌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텐트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다. 텐트는 이미 물에 젖고 침낭마저 물이 되어간다. 다리가 높고 다리의 폭이 넓지 않아 비가 그대로 텐트위로 떨어지고 있다. 다행히 큰 비는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어젯밤엔 하늘이 별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는데…
텐트와 침낭을 걷어 부치고 짐 정리를 한다. 이미 새벽 4시를 넘어버린 시각으로 다리 밑에 웅크리고 앉아 비가 그치기를 염원하고 있을 뿐이다. 길지 않은 기다림 속에 비는 결국 멎었고, 나의 하루는 이미 시작되었다.

타이어 안에는 펑크방지용 테이프가 감겨 있으나 펑크는 여전히 계속되며 나를 기운 빠지게 한다. 야영을 위해 어둠 속의 숲 속으로 막무가내 진입하고 또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심심찮게 가시들에게 당하기도 하지만 종종 튜브자체의 결함으로 펑크 나기도 한다.
펑크는 번번이 나의 질주의지에 찬 물을 끼얹고 만다.

도로는 가면 갈수록 더욱 나빠지고, 어느 샌가 아스팔트의 갓길은 완벽하게 사라져 왕 자갈과 왕 모래의 진흙갓길이 계속된다. 중남미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운전자들도 "도로는 우리의 것, 운전자는 왕!"의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다.
이 도로는 국도이면서 지방도로이며 동네와 동네를 잇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 도로는 그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며 이곳에 사는 모든 이들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운전자들은 도로에 다른 차량이 전혀 없이 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500m 내지 1km 상당의 거리에서부터 경적을 줄 곳 울려대며 자신의 차량 앞에서 어른거리는 자전거나 사람들에게 '꺼져라!'의 강력한 메시지를 날린다. 그러면 도로를 걷고 있던 보행자나 달리던 자전거는 10cm가량의 단차가 있는 왕모래바닥의 진흙 길로 재빠른 동작으로 내려서며 흩어진다.
운전자들은 서행을 자존심 상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는지 보행자나 자전거 옆을 지날 때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많은 짐을 달고 있는 나는 결코 그들의 바램대로 할 수 없어 그들을 무시하고 요지부동으로 나의 길을 간다.
도로에 차가 밀리고 있다면 몰라도 텅 빈 상태에선 지그들이 나를 비켜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특히 거칠기로 정평이 나 있는 트럭운전사들은 창문 밖으로 "Fucking!"을 연발하며 경적을 부술 듯 두들겨 댄다.
'느그들이 욕을 하던, 무슨 개지랄을 하던 나는 개의치 않아. 내가 이 장사 일박 이일(一泊二日)하냐?! 느그 들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호주에서도 나는 수 차례에 걸쳐 "Fucking!"을 배터지게 먹었는데…'

경적 남발횟수의 순위표는 그대로 몰상식한 나라의 순위표가 된다. 성질 급한 우리나라의 운전자들도 종종 대책 없이 경적을 두들겨 패 '공공의 적'이 되곤 하지만 우리의 운전자들도 이젠 경적의 망각자(忘却者)가 되야 한다. 언젠가 우리의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는 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경적의 전설을 가까스로 되살리며 밤새도록 두 손 두 발이 부르트고 까질 때까지 "대한민국, 짜짠짜 짠짜!"를 하는 것으로 우리 합의를 봅시다!
이 곳의 차량우선주의는 중남미국가들보다 더욱 심각하다. 도로를 걷고 있던 한 소년은 차량의 경적을 무시하고 나의 길을 고집하며 달리고 있던 나에게, "차가 달려오면 당신은 무조건 도로에서 잽싸게 내려서서 달리는 차량에 조금이라도 불편을 주어서는 결코 안 된다!"며 근엄한 표정과 함께 단호한 제스처로 따끔한 경고성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나마 비포장이 아닌 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해, 그럼!

내가 중남미의 나라들을 달리는 동안 나를 넌더리와 분노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했던, 무차별로 침 뱉어졌던 "Chino!"는 이 곳, 아프리카대륙에서는 경이로울 정도로 우아하게 정화되고, 승화(昇華)(?!)의 경지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달리기 시작 하면서 도로변의 사람들로부터 날아 와, 나의 귀에 꽂히는 외침 내지는 아우성은 "How are you?" "Good Morning!" "Good Afternoon!" "How are you, My friend!"가 대세다. 어떤 이는 "Chinese!"가 아닌 "Ni Hao!(안녕하세요!:중국어)"를 날리며 나의 뒤통수까지 후려 친다.
중남미나라들의 아미고(Amigo:친구)들이 이곳에 와서 무릎 꿇고 한 수 배워가야 할 것 이다!
이 곳 흑인들의 매너는 어둠을 뚫고 눈부시게 드러나는 그들의 상아빛 이빨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난다.

모기만 사라져 주면 숲 속은 평화와 자유로 충만한 공간이 된다.

마빙고(Masvingo)시(市)가 나타나면서 마빙고 시를 빠져 나갈 때까지 나는 또 내 정신을 잃고 만다. 시나 조금 큰 타운에 들어서면 거리는 한결같이 한 마디로 아비규환이다. 도로는 수 많은 사람들로 뒤덮이고 차량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예측불허에 산만하기 짝이 없어 내 정신의 끈을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 슈퍼에 들러 비상식량을 사서 비축하고 식당에서 제대로 된 음식도 먹으며 심기일전한다.
거리를 걷고 있는 나를 보고 이곳의 젊은이들이 나의 종아리를 가리키며 '통통한 무'를 연상시키는 제스처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남발한다.
내가 어릴 적에 '강력한 다리' '환상의 종아리' 소유자는 바로 '인분(人糞) 푸는 아저씨'들이었다. 그 아저씨들의 주요 활동무대는 결코 평지가 아닌, 차량이 절대 '접근 불가'한 달동네의 가파른 언덕길이나 계단 길이다. 그들은 맨 몸으로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이 길을 잔인하게 무거운 인분 통을 짊어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르내린다. 가끔 그들은 발을 헛 딛거나 인분통의 끈이 끊어지는 어처구니없는 불의의 사고로 한 동네골목을 인분의 강으로 만들며 한 마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도 한다.
정확한 리듬을 타고 박자에 맞추어 언덕길을 내려가는 그들의 인분 통에 동네 악동들이 돌을 던져 넣어 인분의 파편이 그들의 온 몸에 꽂히는 분통터지는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운명처럼, 그리고 삶처럼 묵묵히 인분통의 수행(修行)을 계속한다. 두 인분 통 사이로 말아 올린 긴 바지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그들의 종아리는 당시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강력하고 아름다운 종아리', '소유하고 싶은 종아리'의 대명사로 일컬어졌다.

비록 내 종아리는 그 아저씨들 수준까지에는 갈 길이 한 참 멀지만, 그나마 그 동안 운명처럼 삶처럼 묵묵히 페달 젓기의 수행을 계속해 온 결과임에 틀림이 없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강력한 감동의 펀치를 먹여 준 나의 종아리에 나는 다시 한 번 힘을 주며 그들의 앞을 보란 듯이 우아하게 걸어간다. 참, 그러고 보니 오래 전 네팔과 파키스탄을 지날 때도 동네 조무래기들이 달려들어 나의 종아리를 탐스러운 듯 만지곤 했었어!

평생 이빨과 혀에 부당한 힘을 주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두 어깨와 두 주먹에 전혀 부적절한 힘을 주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평생 과도하게 배 불리고 배 두드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가운데 다리 잔뜩 힘을 주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 호선! 너는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거야?!"
"!@?#$?%^?&*?........................."
"너는 아직도 너 자신을 몰라?! 소 씨(氏) 할아버지(Socrates)가 독약을 마시고 시시각각 죽어가면서도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고 그렇게 강조를 했건만………"
"그게 말 이예요…… 나는 날이면 날마다 눈만 뜨면 페달을 저으며 종아리에 힘주고 살고 있어요!"

이 곳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재배한 밭 작물들을 들고 나와 도로변에서 팔곤 하는데,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다양한 품목들이 나의 눈길을 잡아 끈다.
고구마와 여러 종류의 콩들. 이 아줌마는 모빌 폰의 글자판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이는 시티나 큰 타운을 만나면 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이 예외 없이 날아든다.
"너는 왜 자동차를 놔두고 힘들게 자전거로 여행을 하고 있느냐?!"
아무리 내 머리 쥐어짜도 명쾌한 답안을 만들 수가 없다. 결국 가까스로 만들어낸 궁여지책의 답안은,
"차 값이 얼만데?! 나는 차 살만큼 부자가 아니야!"

무자식 상팔자?! 그런 정신 나간 소리를 읊어대는 분이 도대체 누구야?!
우리 앞에서 두 번 다시 그런 헛소리 내뱉다간 혼이 날 줄 알라고!
우리들의 국어사전에는 오로지 ‘유(有)자식 상팔자’라는 귀절 만이 실려있을 뿐이야!

과속운전자를 향한 안전운행 경고 메시지. 소름 끼칠 정도로 리얼하고 강력하다.

마빙고 시내를 빠져 나와 긴 한 숨 몰아 쉬고 페달 질에 몰입한다. 저녁 6시를 전후해, 빠른 속도로 어둠이 몰려들 때쯤에는 그 동안 뜸하던 차량들이 줄을 이으며 나를 숨막히게 한다. 갓길이 전혀 없어 위험천만한 상태로 적당한 야영지가 눈에 걸리는 대로 도로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야영지가 타이밍 좋게 걸려들지 않으면 진땀 꽤나 흘려야 한다. 운 나쁘게도 도로변으로 철조망이 계속되며 기어들어갈 틈이 전혀 없는데 트럭은 계속 줄을 이으며 나의 뒤를 들이 받는다.
결국 다리가 나타나며 안도의 숨을 쉬고 다리 밑으로 진입을 시도하나 철조망이 온통 둘러쳐져 있다. 결국 철조망이 조금 엉성한 곳을 택해 자전거를 끌다시피 낮은 포복하며 기어들어가 다리 밑에 당도한다.

자전거를 끌고 낮은 포복으로 철조망을 기어 넘어 침투한 다리 밑의 Campsite.
길을 잃은 소 한 마리가 어둠 속의 철조망 앞에서 밤새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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