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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그리고 부상
2013-09-13   최혜진
팀 꾸리기.
그리고 부대장 선출

'부대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선배들의 조언이다.
몇 명 되지 않는 인원인데도, 굳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되지만 역시 경험상 얻은 깨달음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나이 순으로 중요 역할 정하기.
몇 해전 했던 실수는 또 다시 되풀이 된다.
'나이도 있는데, 동생들에게 자존심은 서야겠지..'
이렇게 내린 판단은 팀워크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입장표명에 있어 시원시원함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의 그 동안 쌓아온 이력 구성이 마음에 든다.
그에게 부대장 제의를 했고, 이를 받아들인다.
이로써 팀 운영에 대한 전반적 상의를 할 동료가 생겼다는 생각에 한시름 마음이 놓인다.

몇 번 되지 않았던 만남. 매 약속시각에 대한 그의 불성실은 나를 불안하게 했고, 그를 부대장으로 또한 팀원으로 함께 할 지 고민한다.
1. 시간엄수는 성인이라면 지켜야 할 기초 중의 기초이다.
2. 어떠한 그룹별 이동이라도 그 기간이나, 장소, 상황에 상관없이 구성원의 조화만 원활하다면 즐거운 여정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릉도원에 갈지언정 행복한 시간을 영유할 수 없다.
곰곰이 생각 후 그를 제외시킬 것으로 잠정 결론을 짓고, 다른 팀원의 생각도 묻는다.

팀원들과의 회의 끝에 '내 마음을 커다란 그릇으로 넓혀 누구라도 포용하겠다' 라는 새로운 다짐을 한다. 결국 여정의 초반부터 스스로와의 도 닦기는 화려한 팡파레(fanfare)를 외치며 忍(참을 인)을 수십 번 그려보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忍 忍 忍忍 忍忍忍

규모를 막론하고 어느 단체에서나 원활한 소통이 없이는, 언제나 신경전 혹은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부대장과의 나는 소통 없는 신경전으로 서로에 대한 오해를 쌓고 있었다. 이 여정에 대한 회의도 벌써 인다. 이곳에 온 나는 여행을 하러 온 것인가, 현지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중인가 되뇌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남은 일정 동안 이런 불편한 마음을 안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부대장에 대한 다른 팀원들의 항의도 끊이지 않았다. 그 친구를 돌려 보내든지, 팀 전체를 분산시키든지 결정해야 했다. 따로 불러 대화를 했다. 이 대화가 끝날 즈음 내 결정도 내려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사뭇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30분이나 지났을까? 동안의 속마음을 거칠 것 없이 쏟아내었다. 언성은 높아지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관점을 털어놓고 원하던 여정을 공유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부대장의 요점은 군대처럼 강압적인 분위기가 싫고, 가이드와 다니는 패키지 여행에 온 것처럼 답답했다는 것이고, 내 요점은 다 함께 여정에 대한 상의 없이 마치 가이드로 수동적인 손님들 몰고 다니는 것 같아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결국 요지는 같았다. 대장과 부대장의 적절한 의견교류로 일정을 세워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겠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던 구도였다.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적당한 긴장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긴장이 강압적으로 비춰졌음을 듣고, 조금 더 부드럽게 팀을 이끌어야겠다고 생각을 고친다. 부대장은 이에 반항하기 위해 성숙하지 못한 언행을 했음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적당한 시기에 오해가 풀려 팀의 사기도 한껏 높아졌다.

게을리 하던 촬영도 이제 열을 다해 카메라를 대하고, 덩치에 안 맞게 뒤쳐지던 주행도 힘차게 속력을 내는 부대장. 다른 팀원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그의 가시적 변화는 내게 더 없는 힘을 불어 넣었다. 무엇보다도 본연의 자리에 맡게 행동하려는 의젓함이 기특했다.

오해를 풀고 천군만마를 얻은 듯 컨디션 좋은 부대장 동욱

몇 분 후, 팀 전체 주행 장면을 담기 위해 앞으로 치고 나가던 동욱이가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 속도가 있기에, 팀원들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촬영카메라에 담으려면 멀리 떨어져서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일정 거리를 두고 가야 할 촬영인데,그가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자전거 한대가 도로 옆 구렁텅이에 박혀있다. 그 옆에 부대장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덩그러니 놓여있다. 다행히 주변에 차는 없다. 차 사고가 아니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부상을 응급 처치한다.
 

촬영에 심취한 나머지, 주먹만한 돌멩이를 보지 못하고 고꾸라졌단다. 왼쪽 어깨부터 다리 전체가 쓸려서 대대적인 연고+밴드 작업에 들어간다. 팔목을 잘 못 짚어 붕대로 일단 감아 놓는다.

많이 놀랬을 동욱이.
주행을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았지만, 가까운 휴게소에서 쉬는 시간을 갖는다.
그의 마음도 진정되고, 자전거와 카메라를 재정비한 후 오늘의 목적지인 케미세트(kemisset)로 향한다.

본인 때문에 팀 주행속도가 뒤쳐질 것을 염려한 동욱이는 평소보다 열심히 페달링을 한다. 한 쪽 손으로만 운전한다는 부담을 느꼈을까? 속력을 내며 앞서 간다. 그런데, 그와의 극한 정신적 대립이 풀려서인지, 그 동안 모든 신경을 쏟아 부었던 불편한 관계가 나아지니, 육체적 긴장도 함께 풀렸나 보다.
속이 좋지 않다. 물갈이를 할 때와 비슷한 통증이 온다.

날씨는 화창하고, 길도 좋고. 부상당한 동욱이의 컨디션도 좋아 보이는데, 배가 말썽이다. 뭐 그런 대로 참을만하고 또 참아야만 하는 자리에 있기에 평 속도를 유지하며 그를 쫓는다. 이 괴물 같은 녀석! 왜 이런 때에 속력을 내고 난리야!!!

또 한번의 고속도로진입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속력을 높여 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미 국도와 고속도로가 나뉘는 지점.. 역시 그가 보이지 않는다.
모로코는 모로코식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세계인의 공용어 영어로 된 친절한 간판 따위는 도로에 없다. 직진하면 고속도로, 우측으로 빠지면 국도인데, 이 녀석 불어 문맹을 과시하며 고속도로로 쾌속 직진을 했다. 
 
경찰서장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오는 혜진

복통도 심한데, 짜증이 솟구친다.

고속도로 불법 진입으로 괜히 경찰에게 붙잡힐 것을 염려하여 자진납세 하러 간다.
싱긋 억지 웃음을 보이며, 도로 진입을 잘 못했음을 설명한다. 국도로 다시 나가겠노라고 허락을 구한다.

모로코는 공권력이 절대적인 국가이다. 일반 시민들은 잘 못이 없더라도 경찰이 다가오면 두려워하고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경찰들 역시 엄한 표정과 행동으로 그들을 위협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운 나쁘게 티끌만한 빌미 제공피하기!
외국인에게 관대한 그들의 친절, 그리고 여자 라이더라는 흥미로운(?) 점을 부각시키기.

무서운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던 그들은 자초지종을 듣더니, 다시는 고속도로 진입하지 말라고 당부의 말을 거듭 전하며, 국도로 진입하는 빠른 비포장 길을 알려준다.
그 비포장길은 결국 역 주행을 감행하도록 했지만, 교통경찰국에서 허락한 길이니 안심하고 달렸다. 조금 후, 뒤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아, 또 뭐야?!!"
"Hey, you guys!! no that way! It's WRONG WAY!"
'알아. 안다고. 그래서 제대로 된 길 타고 가겠다고 비포장 도로 역 주행 하는 거야!!' 속으로 외친다.

몇 번 부르다가 대답이 없으면 갈 줄 알았는데, 모로코 사람들 심히 친절하시다. 차들이 내달리고 있는데 가드레일이 설치된 중앙선까지 넘어와서 우리에게 길을 안내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쫄쫄이 차림이다.

모로코 자전거 국가대표와의 만남

로드 자전거다! 아프리카에서 로드자전거를 보다니! 모로코의 지면상태가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나 역시 로드로 가져오는 건데!! 한 명은 자전거 국가대표 프로 선수라고 소개했고, 다른 이는 사업가란다.

"모로코는 지인이 무척이나 중요해요. 보통 여행객은 모로코의 단면만 보고 가죠. 모로코에 아는 사람 없죠? 자전거로 만난 것도 인연인데, 라밧(Rabat, 모로코 수도)으로 오면 연락해요. 가족 못지않은 식사대접과 잠자리를 제공할게요!"

그들의 따뜻한 친절에 감사를 표하고, 지인이 넘쳐나는 우리는 여정을 계속 이어갔다.

국가대표 맞는 거죠? 모로코 쫄쫄이들과 한국 쫄쫄이들

일반 호스트 가정집보다는 머무는 절차도 까다롭고, 가는 길 문의도 쉽지 않았지만, 호스트 가족을 구하지 못해 세 번째 호스트 장소는 청소년 수련원으로 잡았다.


공식적으로는 여행객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한국과 모로코의 협력관계 안에서 이전에 파견 된 KOICA 직원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된 적이 있는 이곳은 주한 모로코 대사관의 배려로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상대적으로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수련원장은 인자하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으면서도 직접 면담 후에는 경찰까지 불러와서 우리의 신변을 확인하고 이동 경로를 체크했다.

아침부터 심상치 않았던 복통은 그 여파를 계속 잇는다. 인도에서의 물갈이는 자전거 주행 전에 시작되었고, 다 함께 앓아 누웠으니 정신적 부담도 덜했는데, 팀원들을 인솔해야 하는 입장에서 정신력으로 이를 이겨내지 못하니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오늘 쉴 곳도 확보되었고, 모처럼만에 낮에 도착했으며 길거리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하루종일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자전거 주행인데 먹질 못한다고?!! 못 먹었다. 내리 탄산음료만 들이 부었다. 그래서일까? 기력도 없고 머리가 핑글 돈다.
자전거 정리와 방을 배정한 후, 팀원들에게 식사하도록 한다. 수수한 침대 위에 몸을 눕힌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이 소란스럽다. 해는 저물었고, 팀원들은 샤워와 식사를 마친 듯 하다. 누군가 나를 다급히 부른다.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듣겠어요. 뭐 가져오래요. 빨리 가져오라는 것 같아요."
천근만근 몸을 일으켜 소란스러운 자리로 간다.
"당장 신분증 가져와."
'아니, 이건 뭐지. 외국인에게 이렇게 무례한 말투를 쓰는 너는 누구냐?'
구시렁 대며 우리 모두의 신분증을 가져다 보여준다.

"아까 경찰이 와서 우리 신분 검사 모두 끝냈는데요?"
"알았어. 나는 적어서 갈 거야."

경찰 서장이란다. 작고 작은 동네에 노란 외국인들이 자전거 끌고 왔으니 동네에 소문이 자자 한가보다. 내 표정, 신음하고 있는 내 구부정한 어깨를 보는 둥 마는 둥, 제 할 일을 천천히 하고 있는 경찰 서장. 신분확인을 마치고 삼엄한 눈빛을 거두더니 내게 이런 저런 것을 물어본다. 왜 왔는지, 얼마나 머물건 지, 여기 와서 용무는 무엇인지.. 궁금한 게 끝도 없다.
나오지 않는 미소를 억지로 쥐어짜며 답한다. 경찰 서장이 우리를 내 쫓으라고 하면 내 쫓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열심히 답하는데, 별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이어진다.

'이 똥개 같은 놈아, 나 죽는다.'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겠다, 우리에 대한 경계는 풀린 것으로 파악하고 자리에 주저 앉는다.
그제서야 내 얼굴빛을 확인 했는지, 가까운 응급실을 알려주고 방으로 돌려보낸다. 조금 후, 따뜻한 차와 과일을 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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