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자전거가 없어졌다.
에디터 : 최용석

1월 8일 마투라(Mathura) - 아그라(Agra) : 56km

오늘의 일정은 '마투라 관광 이후 주행'이다. 가능하면 관광과 주행을 병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델리 출발 전 밀린 일정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부지런해지기로 한다.
우리의 오전 목적지는 '스리 크리슈나 전머부미'다. 힌디어로 '스리'는 존칭을, '크리슈나'는 신의 이름을, '전머부미'는 탄생지를 의미한다. 즉 '크리슈나 신의 탄생지'로서 수많은 힌두교도들에게 사랑받는 성스러운 장소이다. 크리슈나는 힌두교의 대표적인 삼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화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크리슈나의 탄생지로 가는 길은 유독 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해 보인다. 내부에는 힌두사원과 무슬림 사원이 공존하며 수많은 힌두교도들이 방문 중 이었다. 무장하고 있는 군인들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인도 종교분쟁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수많은 힌두교도들은 엄숙한 자세로 기도를 하고 있다. 우리도 이들의 진지함에 압도되어서 엄숙한 마음으로 사원 내부를 둘러 보았다. 비록 이들과 생김새도 다르고 종교 역시 다른 우리들, 하지만 이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신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가니 잠시나마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다른 관광지에서와 달리 이들 역시 우리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기 크리슈나의 기저귀를 빨았던 외부 장소. 사원 내부는 철저하게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관광을 마친 뒤 다시 출발 준비를 한다. 나는 어제부터 감기기운이 있었는데, 이제는 몸살증상까지 나타난다. 관광을 끝내고 오후가 되니 컨디션이 최악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출발은 했지만 자전거가 잘 나가질 않는다.
'원래 페달이 이렇게 무거웠나..'
가까스로 아그라에 도착했지만 이미 해는 져버렸고, 도심까지는 두 시간 이상의 주행이 예상된다. 아그라 외곽은 날이 어두워지자 금새 희뿌연 스모그로 뒤덮여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대장이 선두에서 지친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대원들도 모두 기진맥진이다. 결국 도심까지의 주행을 포기하고, 빈민가와 다양한 상가들이 함께 공존하는 도심 외곽 어딘가(사실, 아그라 도심으로부터 정확히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조차 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몇 번 물어봤지 신빙성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이들의 말이 서로 다르기도 했고, 내 힌디 실력이 모자라기도 했다. 그리고 아프기도 했다. 참.. 골고루 하는 날이다.)에서 숙소를 찾아 보기로 했다. 

한 호텔 앞에서 자전거를 세운 뒤, 정환과 성민이 방 가격과 시설을 확인하기 위해서 들어갔다. 그 동안 나는 계단에 앉아서 멍 ~한 세상으로 들어간다.
'머~어~엉~~'
온몸에 힘이 없고, 속이 메스꺼워서 하루 종일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나마 스프라이트 만이 나의 당분을 공급해주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제길.. 먹은 것도 없는데 구토까지 나오려고 하다니.. 오! 크리쉬나 신이시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빨리 쉬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때 방을 알아보러 갔던 정환이가 나보다도 멍 ~한 얼굴로 다가온다.
"형, 자전거가 없어졌어요"
스스로 내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비교할 순 없겠지만, 아픈 나보다도 더 아파 보인다. '그의 마음이...!'
넋이 나간 정환이의 표정이 순간 나를 치료해 준다.  정신이 번쩍!
'아차.. 내가 이렇게 정신 놓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어디를 둘러봐도 정환이의 자전거는 없다. 어떻게 해야 되나. 갑작스런 긴장에 정말로 신기하게도 아팠던 것들이 순간 사라진다.
꾀병이었나. 스스로도 의아하다.
자전거에는 정환이의 여권을 포함한 모든 귀중품들이 고이 간직되어 있다. 총체적 난국.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삼거리다. 자전거가 없어진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토 릭샤를 잡아서 주위를 둘러보기로 한다. 정환이와 혜진이는 호텔 앞에서 나머지 자전거를 지키기로 하고, 나와 성민이는 두 방향으로 나눠서 재빨리 움직인다. 시환이 형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성민아 혹시라도 도둑이랑 만나면 절대로 싸우지 말고 전화해~!!"
나는 오토릭샤를 타고 급하게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수많은 탈것들이 좁은 1차선 도로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큰 트럭들 사이에 소형차들, 그 사이로 오토릭샤와 오토바이, 그리고 자전거까지.. 남은 공간으로는 사람과 개들이 왔다갔다한다.
'지금 보고 있는 도로가 테트리스 화면이었다면 모든 것들이 퍼펙트하게 사라졌을 텐데.. '
사라지기는커녕 어딘가에서 계속 밀려들어오는 수많은 탈것들이 점점 쌓여가고만 있다.  마음은 급한데 릭샤는 속도를 내지 못한다.
"자전거를 못 찾는다면!? 음.. 자전거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되지.."
포기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릭샤왈라(릭샤운전사)를 재촉해서 가까스로 우리가 왔던 길을 돌아가 보았다. 곳곳에 마음만 먹으면 어둠 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골목들이 보인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주머니에 호신용 칼 확인.
"인도의 골목길은, 특히 밤에 골목길은 위험하다"라고 선배들이 말하곤 했다. 분명히 위험할 것이다.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정환이의 자전거는 보이지 않는다.
이 순간! 어떤 것도 판단불가......  작전상 후퇴. 요즘 후퇴가 잦다....

'아쉬운대로 인도 자전거 한대 사서 뭄바이까지 가야지 뭐.. 어차피 내가 탈 것은 아니자나.. 정환이는 나이도 어리고 힘도 좋으니까 문제 없어! 괜찮을 꺼야..!'
나의 부주의를 자책하며, 앞으로의 대책을 생각해보며, 사실상 포기 상태로 돌아갔는데 이건 뭐지.....?
정환이가 멀쩡하게 자전거와 함께 있다.
"어떻게 된거야?"

내막은 이랬다. 나머지 자전거와 다소 떨어져서 세워져 있던 정환이의 자전거가 정체 모를 외부의 충격으로 쓰러지자, 한 인도인이 자전거를 세워주는 척 다가와서 눈깜짝할 사이에 도주. 이를 목격한 시환이 형은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추격전 돌입. 하지만 자전거 도둑을 잡을 수는 없었다. 자전거 도둑은 급하게 도망가다가 시환이 형을 따돌리기 위해서 크게 우회전. 아무것도 모르고 자전거 도둑이 회전한 방향으로 자전거를 찾으러 갔던 성민이와 극적인 만남의 순간 연출! 성민이를 보고 겁먹은 자전거 도둑은 자전거를 버리고 도주. 성민이는 의기양양 정환이의 자전거를 타고 복귀...
다행히 다소 지능이 떨어지는 도둑 덕분에 웃지 못 할 에피소드로 일은 마무리 되었다. 이날 정환이는 자전거를 아무데나 방치한 일로 호되게 주의를 받았고, 나는 팀 관리를 못한 죄로 시환이 형에게 장시간의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어쨌든 일이 잘 마무리 되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몸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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