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백의 도시, 브로큰힐
에디터 : 박규동

1996년 9월 13일(金)     브로큰힐 카라반파크 캐빈 #5
                      야영 → 브로큰힐

아침식사 베이컨,식빵,계란후라이
06:10 3℃
06:20야영지에서 출발
07:20휴식 6℃
08:25휴식 파워바
09:20휴식 오렌지쥬스 12℃ 맞바람
10:05휴식 오렌지쥬스
10:30브로큰힐(Broken Hill)도착
점심식사 테이크어웨이 식당 햄버거,콜라,감자칩 식사비$11.40
아웃도어가게와 수퍼마켓 자전거 가계 등에서 물품구입 구입품 쉘라이트가솔린7ℓ 가스 큰통2개 $49.00 요리용뒤집게 $4.70 식빵3개 $6.42 꿀500g 2개 $5.20 콜라2ℓ$2.19 오렌지쥬스2ℓ4개 $13.04 우유2ℓ$2.70 우유1ℓ$0.89 소꼬리1.5kg $8.44 고기$20.96 버터 875g $3.43 BBQ소스 $1.99 야채 $13.1 휴지 $1.75 트레일러 타이어3개 $19.50 자전거 타이어2개(로드용)$24.00 젤 안장덮개1개 $21.00 뒷 비상등2개 $44.00 AAA건전지4개 $7.52 흰색 티셔츠1장 $5.94
카라반파크 남위:31°51.6′ 동경:141°26.3′
캐빈숙박비$30.00
저녁식사 소꼬리 곰탕,밥,장아치,야채

최고속도16.0
평균속도8.4
운행시간4.38.58
주행거리39.43
누적거리1690.6

06시 30분 캠프지를 출발. 바람이 약간 누그러지긴 했지만 여전히 맞바람. 추워서 털장갑에 파일자켓까지 껴입었다. 11시경 브로큰힐 도착.
브로큰힐은 브리즈번에서 퍼스 사이에 있는 가장 큰 도시이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아웃백이지만 세계에서 몇 번째 가는 큰 은광이 있어서 흥성했던 도시이다. 그러나 지금은 은 생산량이 줄어들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덕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브로큰힐'이 앞에 있다.

장비점에서 야영용 연료 화이트가솔린 7ℓ, 야영 가스 4,000cc를 샀으며, 자전거점에서 트레일러용 타이어 3개, 자전거용 타이어 2개를 사서 모두 교체하였다.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식품점 빅더블유(BIG W)에서 우연히 쇠꼬리를 살 수 있어서 꼬리곰탕을 고아 먹었다. 맞바람과 부딪치느라 체력소모가 컸다. 그래서 내일은 휴식하기로 했다. 카라반파크 매니저가 2주일나 더 바람이 불 거라고 얘기한다. 폭풍의 계절이란다.

대형할인점 빅더블유

추운 아침. 털장갑에 파일자켓까지 껴입었다. 
브로큰힐은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마지막 도시이며 다음은 사우스오스트랄리아 주이다. 사우스오스트랄리아(SA)주는 산들이 꽤 많아 풍경이 좋을 것 같은 기대를 한다. 물론 고비 고비 넘어가는 어려움도 있겠지만 바람만 도와준다면 지금까지 보다 더 재미있는 일정이 될 것 같다.
재미라는 게 고작 평지를 벗어나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브로큰힐 사람들도 모두 친절하다. 길을 물으면 먼 곳까지 따라오며 일러주고, 자기 점포에 없는 물건은 다시 어디에 가서 구입하라고 알뜰이 소개해 준다.

32번 도로에서 에들레이드로 빠지는 길 옆에 카라반파크가 있어 입촌했다. 정년을 넘긴 노인들이 카라반을 자동차 뒤에 끌고 다니며 여유롭게 여행을 하고 있다. 나이에 따른 공식 코스처럼 다들 그렇게 호주의 노후를 살고 있다.
머리카락이 흰 호주 할아버지, 할머니들 틈에 나는 창민이 대장과 더불어 나이를 잊어버리고 청년이 된다. 그들이 나를 창민이 친구로 불러준다. 브리즈번에서 푸쉬바이크(push bike)로 왔다고 너도 나도 말을 건넨다. 오토바이크에 비교해서 자전거를 푸쉬바이크라 한다.

카라반파크의 여행 중인 차량들

오늘 까지 총 1,700km가량 운행을 하였다.
브로큰힐, 직역을 하면 부서진 능선이다. 동쪽 70km 전방에서 멀리 보았을 때에는 지평선에 떠 있는 능선이 남쪽 한 끝이 뚝 잘려 있었다. 그래서 지명을 정한 것인지? 가까이 와 보니 큰 산이 하나 잘려 나갔다. 100년도 넘게 광산을 하느라 깨고 부수어 능선 한 토막이 평지가 된 것이다. 부러진 능선이 있는 곳, 이것이 호주다. 


 
9월 14일(土)     브로큰힐 카라반파크 캐빈 #5
                브로큰힐에서 휴식

브로큰힐에서 휴식
캐빈 숙박비 $30.00
빨래(세탁기, 건조기)세탁비$4.00
수퍼마켓에서 물품구입 볼펜$2.23 플라스틱 용기$2.48 전구 12V 5W 2개 $3.06 강력접착제 $0.82 후라이팬 $11.82 카메라 삼각대 $139.00 도마 $3.29 고기$6.30 소뼈 $1.14 소꼬리 $4.05 쌀2kg $2.77 아이스크림 2개$2.77
저녁식사 밥,소꼬리곰탕,장아치,야채

쉬는 날이다.
그런데도 아침 06시에 일어나게 된다. 어제 저녁 쇠꼬리곰탕을 해 먹었더니 한결 가뿐한 기분이다.

아침에 울루루공원으로 수학여행 가는 학생여행단을 만났다. 대형 버스에 43명의 학생이 텐트와 숙식장비를 갖추고 도중 도중 야영하면서 17일간 여행을 한단다. 어제 밤은 이 곳 브로큰힐 카라반파크에서 야영을 하였다고 하면서 대형 조리장비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솔자 겸 운전사가 열심히 설명해 준다.
중고등학생들이다. 우리 나라에도 현실 체험교육이 폭넓고 다양하게 시행될 수 있다면 좋겠다. 현실이야말로 바로 역사이며 지리, 자연, 환경, 협동의 교육이 아니던가? 브리즈번에서 만난 우리 나라 교사님들, 돌아가셔서 산 교육을 펼칠 날이 있으리라.

캠핑을 하며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


버스에서 캠핑 장비를 내려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카라반파크 이용이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편리하다. 카라반을 빌려 쓰면 우선 조리시설이 있어 찌개 끓이고 밥 해먹어도 눈치 안 보는 것이 좋다. 공동화장실, 공동샤워장, 공동빨래방, 공동세차장 이런 시설들이 잘 되어있을 뿐 아니라 그 곳에서 만나는 현지인들과 인간적인 대화도 나눌 수 있어서 퍽 교육적이다.
값도 모텔에 비하면 싼 편이다. 카라반파크는 카라반을 끌고 다니거나 텐트를 갖고 다니는 고객에게는 자리만 빌려 주지만, 고정 설치된 카라반이나 캐빈이 있어서 빌려 주기도한다. 단 카라반이나 캐빈을 빌려 들 경우에는 침낭이 있어야 한다.

아들과 여행하는 것은 참 따뜻하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서고, 먹을 게 있으면 아들에게 더 나누어주고, 아들이니까 실수를 해도 모두 담아 낼 수가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어디 있을까?
내 마음이 따뜻한 것은 아들이 곁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힘들면 그를 쉬게 하고 싶고, 그가 추우면 내 옷이라도 꺼내 입혀야 하고, 그가 목이 마르면 내 마실 물을 줘야 하고, 이렇게 헌신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는 게 참 따뜻하다. 천둥번개가 치던 밤, 만약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다쳐도 좋지만 아들은 무사하기를 빌었고, 야간 주행 때에는 내가 뒤에 서서 달리며 차량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해 왔으며, 물이 부족할 때에는 나는 목마름을 참아 왔다.
큰 아들과 백두산을 두 번 올랐고 둘째 아들과 뉴질랜드 마운트 헛에서 스키를 즐겼으며 이제 막내와 이 길을 달리고 있다. 다 큰 아들도 언제나 어린애 같아 보이는 게 부모 마음이지만 오히려 아들들은 나를 보살피느라 속을 태울 것이다. 그러나 막내는 아직도 막내 같다.
그들이 있으므로 내 마음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무한히 감사한다. 그들에게 아직도 무엇인가 해줄 수 있고, 그들을 대신하여 희생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아직도 지닐 수 있다는 게 참 따뜻하다.

기어코 카메라 삼각대를 구입했다. 그 동안에는 창민이와 둘이서 서로 찍어 주기만 했다. 때문에, 둘이 함께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중량에 대한 부담을 무릅쓰고 카메라 삼각대를 구입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쇼핑몰 앞에 현대자동차가 전시되고 있어서, 삼각대를 구입한 의미로 그 앞에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현대차

하루 쉰다는 게 쉽지가 않다. 매일 매일 강행군을 하다가 쉬게 되니까 뭔가 몸이 이상한 것 같다. 그러나 몸 전체 컨디션 조절에는 꼭 필요한 하루가 된 것 같다.
시간도 30분이 늦추어졌고 사우스오스트랄리아 주의 생활권으로 옮겨진다.

호주 아웃백에는 집집마다 제일 큰 건물이 물탱크이다. 큰 타운이나 작은 마을에서도 빌딩같은 크기의 물탱크가 의례 서 있다. 물이 부족한 나라다. 물 때문에도 많은 인구가 살 수 없는 나라라고 한다.
풍차가 여기 저기서 돈다. 시골 농장에는 풍차가 돌며 그 힘으로 지하수 깊은 물을 퍼 올린다. 그 물로는 가축용과 설거지 밖에 할 수 없다고 하지만 말이다.
장화가 사람마다 필요한 나라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지, 비가 내리는 날이면 포장이 되지 아니한 지역은 모두가 진흙바닥의 진창으로 변한다. 비가 내리면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을 걸어다닐 수 있는 호주식 장화가 필요하다.
누구나 모자를 쓴다. 두꺼운 밸트 챙이 사방으로 넓게 펴진 모자. 오존층이 얇아서 자외선이 강하다. 하루 이틀만 피부가 노출되어도 곧 원주민처럼 검붉게 된다. 모자가 꼭 필요한 나라.
자동차 범퍼가 튼튼해야 하는 나라. 캥거루와 부딪혀 부서지거나 다치지 않으려면 범퍼 앞에 튼튼한 가로 버팀 대 캥거루바가 필요하고 앞 유리창 앞에 철 그물망을 하고 다녀야 하는 나라.
바위가 없는 나라. 바위가 있으면 그것이 곧 풍경이 되고, 공원이 되고, 유명관광지가 되는 나라, 이것이 호주라고 그들은 말한다.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풍차 '윈드밀'

그 표현 속에는 더러 체념도 묻어 나온다. 그러나,그 체념의 의미를 넘어서면 의식의 감춰진 한 켠에는 그들의 강인함과 인내심이 은연 중에 나타나는 것이다. 자연의 열악한 환경에 적응 한다는 것은 호주인들에게, 적어도 아웃백에 사는 호주인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누이트가 북극에서 갖는 프라이드만큼 이곳 호주인들은 아웃백에 사는 동식물을 포함한 생태계에 군림하는 왕자로서의 자신 만만함과 거만함과 영웅성을 갖고 있다.
도시인들처럼 자지러지게 웃지도 아니하고 어지간한 농담에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 표정, 그 표정을 읽노라면 황토폭풍이 몰아치고 양철지붕이 들썩들썩 하는데도 카페의 카운터에서 맥주병을 훌쩍이며 무표정할 수 있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비가 오면 곳곳이 물에 잠기고 바람이 불면 땅이 먼지되어 날리고, 해가 뜨면 어느새 대륙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나라. 해안의 도시 지대를 제외하면 모두 아웃백이라 하는데, 그곳에 사는, 아니 그곳 아웃백에서 생태하는 호주 이민 5세대 6세대의 꿈은 무엇일까? 꿈이 있기는 한가? 이미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꿈이 없이 살아가는 건 아닐까?

살다 보면 보고 싶은 게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넘치는 물을 보고 싶고, 부는 바람, 반짝이는 별,은하수, 누님 눈썹같은 초승달, 지평선이 바라보이는 황야, 그 곳에 뛰노는 야생동물과 노래하는 새들, 그런 게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걸 다 보고 사는 곳이 이 곳 호주의 아웃백이다. 있을 게 다 있으면서도, 어쩜 꼭 있어야 할 게 없기 때문에 아웃백에 생태하는 주인들은 아웃백에 사는 것이 곧 긍지인지 모른다.
아웃백에 둘러 쌓인 도시, 브로큰힐에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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