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8~09/01
인도양에서 다시 시작하다.
2011-05-26   박규동

1996년 9월 30일(月)     18시 50분  그레이하운드 파이오니아 사의 퍼스행 버스.
                 세두나 → 눌라보 평원 (버스는 밤새 운행)
 
19:00 퍼스로 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에 승차. 버스는 밤을 세워가며 눌라보평원을 달린다.

버스는 26시간 만에 세두나를 떠나 퍼스에 도착했다.


1996년 10월 1일(火)     퍼스(Perth) 쉐보이롯지(Chevoit Lodge)
                 눌라보 평원 → 퍼스 (버스는 밤새 운행)
19:30 퍼스 도착 쉐보이 롯지(Chevoit Lodge)숙박 남위:31°56.6′동경:115°52.3′숙박비 2일 $60.00

자전거는 버스 뒤에 이어 놓은 화물 트레일러에 싣고 따로 요금을 받았다. 대륙을 횡단하는 버스답게 대형 크루져 형 차량에 이어 뒤에는 대형 화물 트레일러를 달고 다닌다. 승객실 뒤편 아래층에는 교대하는 운전기사의 취침실이 있고 서너 시간마다 교대를 하였다. 야간에 눌라보를 통과 하도록 시간표가 짜여진 것은 한낮의 뜨거운 더위를 피하는 배려인 것 같았다.
 
운전기사 두 사람이 번갈아 운전하며 버스는 26시간 만에 퍼스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자전거를 조립하고 꼬리차를 연결하고 나니 20시.
 
누군가 건네주고 간 명함의 주소를 찾아 숙소로 가, 롯지에 숙소를 정하고 나니 차멀미 피로가 온 몸으로 퍼진다. 버스편으로 오면서 살펴보니 퍼스 부근 동쪽의 산간지역을 빼고는 2,000km가 거의 평지 같아 보인다.
 
내일 인도양에 가서 신고식을 하고 와서 떠날 준비를 하는 거다. 다시 반을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는 것이다! 제 2구간을 힘차게 출발하는 것이다.
 
당뇨병 기운이 좀 더 세어진 것 같아 걱정이다. 체력이나 몸 관리가 되지 않으면 마음 관리도 어렵게 된다. 욕심을 좀 줄여야 하겠다.
 
실제로는 호주를 횡단한 셈이다. 자전거로 5분의 3, 버스로 5분의 2.
퍼스,
호주의 서쪽끝 도시. 무엇이 있길래 그냥 왔다가 돌아가는가?

퍼스의 킹스파크

땅 끝 도시 퍼스의 그레이하운드 터미날, 어디서나 종착역에는 마중을 나오고 반갑게 사람끼리 만나고 그런 사람사는 멋이 있다. 유학간 아들이 돌아오고, 기다리던 애인이 군에서 휴가 오고, 사연과 정감이 오가는 곳이다. 호텔에서 나온 숙박객을 유치하는 사람들의 호객하는 바쁜 모습. 자기 호텔에서 싸게 자라고 조르기도 하고, 지도와 전화번호를 건네주는 사람들, 택시기사의 손님 기다리는 눈초리, 뉴욕, 파리, 뮌헨, 동경, 서울 어디서나 종착역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모두 뿔뿔이 헤어진다.

도중 칼구리에서 자전거를 갖고 버스를 탄 젊은 지질학 기사가 있었다. 끼리 끼리라고 금방 자전거 얘기를 주고 받으며 심심치 않게 동승해 왔다. 그도 퍼스의 밤으로 헤어져 갔다. 만나고 헤어지며 사는 게 사람 사는 보통의 일인지 모르겠다. 만나서 좋은 사람, 또 헤어져서 좋은 사람, 싫어도 만나야 하는 사람, 좋아도 헤어져야 하는 사람. 버스 정류장마다 만나고 헤어지고 하더니, 종착역 퍼스에서는 모두 헤어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도 자전거의 깜박이 등을 켜고 숙소를 찾아 퍼스의 밤 도시로 페달을 밟아 헤어져 왔다.


1996년 10월 2일(水)     퍼스. 쉐보이 롯지
                 쉐보이 롯지 →인도양 시티비치 → 쉐보이 롯지
 
11:00 쉐보이 롯지에서 출발
11:40킹스파크(King's Park)에 도착
13:00시티비치에 도착 롯지로 돌아오는 길에 물품 구입
고추장 $5.85 인스턴트 육개장 2개 $7.90 김치 $2.95 다시다 $1.29 얼굴모기장 2개 $10.00
17:00쉐보이 롯지 도착 
 
최고속도38.8
평균속도11.2
운행시간3.31.19
주행거리40.85
누적거리2718.0

퍼스의 서쪽, 인도양 바닷가 시티비치에 가서 바다에 발자국을 새기고 왔다.
태평양에서 찍은 발자국과 인도양에서 찍은 발자국을 모아 중간점 세두나의 남대양에서 만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지도를 보면 퍼스의 시티비치를 찾아나섰다.

무지하게 넓은 공원 한 가운데에서 길을 물어 본 사람은 장애인이었다.
50대로 보이는 이 장애인은 자신에게 길을 물어 준 것에 감사하며
목발을 짚고 우리 앞을 뛰듯이 걸어서 공원 출구까지 안내하여 주었다.

해변가의 꽃

그런데, 시티비치를 찾아가는 도중에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렵사리 길을 물어가며 바닷가에는 도착하였으나 해안이 모두 모래 언덕으로 가려져 있어서 한참이나 입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드디어 좁고 구불구불한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얼떨결에 들어가긴 하였으나 바로 그 곳이 누드비치가 아닌가!
어쩌면 좋단 말인가. 모두 옷을 벗은 체 일광욕을 하고 있지 않은가!
황당하고 부끄러운 것은 옷을 벗고 있는 그들이 아니고 옷을 입고있는 우리 두 부자 쪽인 것이다. 얼른 되돌아 나오려고 하였으나 그것도 쑥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아, 가만히 용기를 가다듬고는 파도가 일렁이는 물 가로 나가서 자전거를 세워 놓고 창민이와 서로 번갈아 가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정작 두 사람이 한꺼번에 찍히는 기념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어쩌면 좋을까 망설이던 차에, 어차피 실수한 것이라 인정하고 가까운 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 중 남자에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 달라고 부탁하였다.
다행이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는 우리의 부탁에 응해 주었고, 옷을 입고 서 있는 우리 두 부자를 옷을 벗고 선 그 남자가 사진을 찍어 주는 것이 아닌가.

한동안 더 찾아 헤맨 뒤에 제대로 씨티비치를 찾아서 기념 촬영을 하고, 싸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는 시내 중심에 자리한 킹스파크를 통과하여 롯지로 돌아 왔다. 킹스파크에는 며칠 전에 내린 봄비로 야생화가 모두들 뽑 내며 피어 있었다. 쉐보이롯지로 돌아와, 그 꽃 길을 소개해 주었던 여자 메니저에게 꽃 얘기를 자랑해 주었더니, 모두들 우리에게 행운아라고 한다. 꽃이 늘 따라다닌다고 말이다. 

해변 들어가는 길

퍼스의 누드비치

고정관념을 버리면 세상이 바뀌고 인생은 변한다. 날씨와 바람을 뚫고 곧장 오지 못한 것이 무슨 페배나 한 듯 마음 한 구석이 억울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오면서 마음을 한껏 열고 보니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소요의 묘미가 되는 것이다. 관념이라는 의식조차 마음에 짓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체력이 닿는 데로 마음이 쓰이는 데로, 바람부는 데로 가는 것이다. 나는 돈 욕심보다 명예 욕심이 더 흉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욕심을 부려서 된 일이 없었다. 부질 없는 관념의 틀을 깨고 스스로 즐거운 마음을 갖자.

롯지,
미국과 달리 호주에서의 롯지는 마치 유스호스텔과 같다. 유스호스텔도 이 곳에서는 앞의 유스를 빼고 호스텔이라고 하며 나이 많고 적음을 나누지 않는다. 나도 브리즈번에서는 호스텔에 5일은 머물렀고, 퍼스에서 롯지에 이틀 째 머문다.
호스텔은 말하자면 시내에 있는 가장 저렴한 숙소이다. 방마다 침대를 여러 개 설치하고 한 사람에게 10불에서 20불까지 받는다. 공동 화장실, 공동 샤워 장, 공동 취사장 겸 식당, 공동 세탁기를 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배낭여행하는 젊은이와 더러는 나이 지긋한 실버들도 가끔 이용한다. 가족이 묵는 경우도 있고, 젊은 부부가 함께 다니는 경우도 있고, 우리처럼 부자간인 경우도 있다. 호주인, 유럽인, 미국인, 캐나다인, 동양인 등 정말 인종이 다 모인 유엔 식당 같다. 방으로 가면 함께 룸메이트가 된 친구와 국적, 여행목적 등 이야기가 나눠지며 바로 친해진다. 그리고 대부분 취사장 겸 식당에서는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이게 되어서 서로 인사하고, 날씨, 관광, 식품 등 정보를 주고 받는다.
세계의 갖가지 음식이 요리되고, 식탁별로 소스가 다른 음식을 먹으며 여러 나라 언어가 동시에 얘기된다. 공동 냉장고에 보관된 여러 사람들의 음식재료들, 또 쓰고 남은 음식재료들을 다음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고 가는 보관함. 선반마다 자기 이름이 쓰여진 비닐봉투에 담긴 음식들. 그런 혼돈 속에서도 유엔본부처럼 공식적으로 영어가 소통되며 젊은이들이 꿈과 질서를 지켜 간다. 사용한 그릇과 냄비, 수저 등은 말끔히 설거지 되고 마른 수건에 훔쳐져 제자리에 다시 배치된다. 말보다 예절이 앞서고 감정보다 미소가 더 크게 내 보인다.
이 젊은이들이 미래에 세계를 이끌고 갈 사람들이 아닌가! 그래서 믿음직스럽다. 지구의 미래가 그래서 밝은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경험을 나누어 주고 젊은이들은 선배들의 체험을 얻어 담는 지혜가 보인다.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배낭여행을 떠나거든 호스텔에 머물며 세계의 젊은이들과 정을 나누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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