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라보, 해안절벽에 서다.
2011-08-10   박규동

1996년 10월 18일(金)     보더빌리지(Border Village) 캐빈 #10
                       문드라빌라 → 유클라 → 보더빌리지

6:00 8℃ 맑음 북풍중
아침식사 스테이크샌드위치,커피스테이크샌드위치4개(점심,간식용) 커피2잔 커피우유2개 매식 $27.00
07:05 문드라빌라에서 출발
08:10 휴식 18℃ 맑음 북풍중
09:10 휴식 비스켓,치즈 22℃ 맑음 북풍중
10:10 휴식 23℃ 맑음 북동풍약
10:50-11:30 식사 쉼터 유클라 28km전 스테이크샌드위치
12:15 휴식 26℃ 맑음 남풍중
13:12 휴식 오렌지 24.5℃ 맑음 남풍중
14:15-15:15 유클라(Eucla)약품 판매 식사 콜라,스테이크샌드위치 식사비$16.80 15:55휴식 22℃ 맑음 남동풍중약
17:10 보더빌리지(Border Village) 도착(영업시간 06:30∼21:30)
사우스 오스트랄리아 주로 진입 카라반 파크 남위:31°38.4′동경:129°00.3′
캐빈 숙박비 $35.00 저녁식사 육개장,밥,참치,야채,짱아치 물품구입 커피우유 2개 $3.90 스테이크샌드위치 8개 햄버거 4개 $62.40 물 6ℓ 콜라1.25ℓ 리프트(음료)1.25ℓ 파워에이드(음료)2개 오렌지4개 $22.40
 
최고속도21.9
평균속도12.0
운행시간6.44.15
주행거리81.47
누적거리4217.1


유클라 패스를 7Km쯤 남겨 둔 지점에서 우리의 운행장면을 장시간에 걸쳐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는 유고의 외교관 부부를 만났다. 인터뷰 형식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받고 성실하게 답변했다. 청소년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 같았다.

유고의 외교관 부부와 헤어져 유클라 패스를 4Km 남겨 둔 지점에 이르렀을 때이다. 벼란간 흰색의 길다란 물체 2개가 아주 빠른 속도로 테이블랜드를 배경으로 이동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얼결에 로드트레인이 빨리도 가는구나, 저런 모양의 로드트레인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잠깐 뒤에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그 물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평원에서는 아무리 빠른 차량도 이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라서 그 부근에 굴곡이 아주 심한 도로가 있어서 언덕 아래로 내려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물체가 지나갔음직한 지점에 와 보았지만 그런 방향의 도로가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환상인가, 착각인가. 아니면 정신이상이란 말인가? 스스로 의심을 해 보았으나 해답없이 유클라 패스를 낑낑되며 올랐다.
그런데 유클라 언덕에 오르자마자 첫 번째 보이는 안내간판에 'UFO를 조심하라'고 장난처럼 지적하고 있는 게 아닌가!

보더빌리지, 뒤에 Beware UFO(UFO 조심) 표시판이 눈에 띈다.

제발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도 제 정신이 아니다. UFO를 목격한 것이다.

동경 129도상에 위치한 보더빌리지는 서쪽으로 서오스트랠리아주 동쪽으로 남오스트랠리아주로 나눠지는 경계선마을이다. UFO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인상적이었다
유클라 패스를 힘겹게 올라 테이블랜드에 올라서니 로드하우스와 작은 모텔이 있었다. 그 옆에 작게나마 박물관을 만들어 놓고 호주 개척 당시에 쓰던 전송장비, 자전거, 병, 그릇들과 탐험가 존 에어의 사진 등을 전시해 두었다.
남쪽으로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해변에는 모래 언덕이 펼쳐져 있다. 80년 전에 폐쇄된 전보전송 스테이션이 모래에 반쯤 파묻힌 사진이 로드하우스 벽에 걸려 있다. 무척 흥미로운 장면이다. 그 모래 산이 멀리 보인다. 모래가 파도에 밀려오고 다시 남풍이 모래를 언덕으로 불어 올려 모래 산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인간의 상상은 세월이 만들어 가는 우주논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유클라에서 점심을 먹고 박물관을 둘러본 후 16시 20분 경에 주 경계를 넘고 사우스오스트랄리아 주에 도착하였다. 동경 129도를 분기점으로 주경계를 나눈 모양이다. 경계선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보더빌리지의 하나 뿐인 로드하우스의 카라반파크에 캐빈을 빌려 들었다. 주 경계에는 과일파리검문소가 매우 크게 지어져 도로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이정표에는 친절하게도 뉴욕, 파리, 런던, 남극, 브리즈번, 에들레이드 등의 거리를 자세하게 적어 놓았다.

갑자기 피로가 느껴진다. 더위 때문인가 보다. 내일부터 3일간은 하루에 93km이상 달려야 하는데 지금 컨디션으로 짐작이 어렵다. 물과 식량을 충분히 준비하라고 창민이 대장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몸이 기력을 다한 것 같아서 계획처럼 운행이 될지 모르겠다.
몸이 지닌 여러 기능들을 한계까지 써 버렸는지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원인 모를 콧물도 자꾸 생긴다. 자전거에 올라타면 신나는 기분보다 어떻게 내리막이라도 나타나서 쉽게 갈 수 없을까 하고 꾀가 나기도 한다. 생각도 정리가 되지 않고 의욕도 사라져 가는 게 느껴진다. 5일 또는 6일 간이면 모두 끝날 터인데 몸이 잘 견뎌 주었으면 좋겠다. 저녁식사 때에는 젓가락 쓸 힘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물이 더욱 귀한 곳이다. 샤워하는데 5분에 1불씩 동전을 넣어야 한다.
이틀간 마실 음료수를 샀다. 마실물 6ℓ, 콜라 1.25ℓ, 스프라이트 1.25ℓ, 파워에이드 1ℓ를 구입하였고 따로 준비한 보리차 2ℓ, 그리고 요리용 물 18ℓ, 수통에 남은 물 1.5ℓ, 마치 물장사 같다.

아침 출발 시에는 북풍이 9시 10시 방향에서 불다가 점심 때 잠깐 6시 방향을 거쳐 곧바로 3시 방향 남풍으로 바뀌며 세력이 강해진다. 3일째 같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래도 남풍이 불면 다소 시원해진다. 바람의 저항이 커져도 남풍의 시원한 맛에 어려움을 잊어버린다. 내일은 어떨지 모르겠다.

 
 
1996년 10월 19일(土)     야영. 쉼터(보더빌리지 77km후방)
                       보더빌리지 → 야영(눌라보 110km전)
 
아침식사 스테이크샌드위치,육개장,녹차
06:58 보더빌리지에서 출발
07:55 휴식 16℃ 비 남풍중약
08:45 휴식 16℃ 비 남풍중
09:40 휴식.18.5℃ 구름 남동풍중
10:40 휴식 사과 19℃ 구름 남동풍중강
11:45-12:15 식사 도로옆 보더빌리지 39km후 스테이크샌드위치,리프트,녹차
13:00 휴식 19.5℃ 비 남동풍중강
13:55 휴식 19℃ 구름 남동풍중강
14:40 휴식 비스켓,치즈,파워바 19℃ 구름 남동풍중강
15:40-16:30 식사 도로옆 보더빌리지65km후 햄버거,콜라,녹차 박창민 트레일러 타이어 고침
17:15휴식 16℃ 구름 남동풍중강 17:55 쉼터에서 야영 남위:31°35.8′ 동경:129°47.6′ 저녁식사 된장국,밥,짱아치,햄,야채
 
최고속도 17.8
평균속도 9.8
운행시간 8.06.48
주행거리 80.31
누적거리 4297.4


오른쪽 어깨로 멀리 바다를 보면서 해안을 따라 80km를 왔다. 전체 구간 중에서 바다를 가장 가깝게 나란히 가는 길이다.

구름 낀 아침에는 남풍이 3시 방향에서 불더니 점점 세력이 강해지면서 낮에는 2시, 1시 방향으로 발전하여 오늘 계획 92km를 채우지 못했다. 멋진 해안을 따라가면서도 간간이 뿌리는 빗방울과 남풍의 추위를 막아 내느라 경치 구경도 잊었었다. 더구나 쇠잔해진 체력(기진맥진이라고 해야 할지)은 맞바람을 견디기가 참으로 힘겹다. 일정이 하루이틀 더 늦어지겠다.
 


눌라보 1,210km 구간에는 식료품을 구입할 곳이 없다. 노즈맨에서 구입해온 식품 중에서 통조림과 쌀 밖에 남은 게 없다. 빵은 3일분을 다 먹었고 햄은 더운 날씨로 변질이 생길 것 같아 버렸다. 밥을 짓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저녁에만 해 먹는다. 그래서 로드하우스를 통과할 때마다 다음 로드하우스까지 먹을 아침, 점심, 간식용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구입해서 싸 갖고 다닌다. 오늘은 12개의 샌드위치와 햄버거를 준비하였다. 눌라보 로드하우스까지는 182km이며 이틀이 더 걸리는 거리다.


1996년 10월 20일(日)     야영. 물탱크가 있는 쉼터(눌라보 43km전방)
                      야영 → 야영(눌라보 43km전 쉼터)
 
아침식사 스테이크샌드위치,스프
06:45 야영지에서 출발 8℃ 맑음 북동풍중약
07:35 휴식 14℃ 맑음 북동풍중강
08:35 휴식 비스켓,치즈 15℃ 맑음 북동풍중강
09:35 휴식 18℃ 맑음 북동풍중
10:40 휴식 비스켓 22℃ 맑음 북동풍약
11:45-12:52 식사 쉼터 (라임스톤 해안절벽) 눌라보 59km전 스테이크샌드위치,리프트,녹차
13:45 휴식 20℃ 맑음 남동풍중강
14:45 휴식 파워바 19℃ 맑음 남동풍중강
15:45 휴식 19℃ 맑음 남동풍중강
16:45 휴식 오렌지,호두 18℃ 맑음 남동풍강
17:55 물탱크 있는 쉼터에서 야영 눌라보 43km전 남위:31°33.8′ 동경:130°28.2′
저녁식사 미역국,밥,참치,햄,짱아치,야채
 
최고속도 13.4
평균속도 8.4
운행시간 8.15.20
주행거리 69.54
누적거리 4367.0


강한 동풍이 아침부터 12시, 1시 방향에서 불어왔다. 70km운행.
 
도중에 주도로에서 남쪽으로 1Km를 나아가 바다를 보았다. 해안절벽의 웅장한 경관은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대하는 괜찮은 구경거리였다.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지평선과 수평선이 절벽에서 서로 만나 땅이 부서지고 절벽이 곤두박질 치며 물살이 갈라지는 장면은 볼만하였다. 그 절벽 물거품 사이로 가끔 물개들이 모습을 보였다. 절벽의 높이는 40-100m가량 되며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는 것이 약 300km나 되고, 전체 길이는 2천 몇백Km라고 한다.
이것이 호주다.





키가 허리를 넘는 나무가 좀처럼 없다. 그래서 눌라보라 한다. 딩고, 갈색독사, 도마뱀 등 야생동물을 여러 차례 만났다. 키 높은 나무가 없다 보니 동물들이 쉽게 눈에 띈다. 맞바람과 뜨거운 햇살, 그러나 남풍이 섞여 불어서 오늘은 기온이 크게 높지 않다. 자켓을 입었다 벗었다 하였다.
 
몹씨 힘이 든 날이었다.
힘이 들고 어려울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눌라보의 사과를 따다 주고 싶은 나의 아프로디테!
당신의 나이를 나는 모릅니다. 당신의 생일도 모릅니다. 당신을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도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초야에 당신이 나에게 주신 순결의 피를 각인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고향이 어디이며 혈액형이 무엇인지도 나는 모릅니다.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당신에게로 향하고 있는 내 가슴의 열정은 눌라보의 더위보다 뜨겁고,태평양처럼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의 기억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이승의 어리석음을 뒤로 하고, 저승의 기억으로 당신께 달려가고 싶습니다.
눌라보의 고난과 인내의 사과를 오직 당신께 바쳐야만 합니다.


바람이 불면 눌라보 평원에서는 텐트자리 찾기가 어렵다. 16시가 되면서부터는 야영지를 찾기 시작한다. 야영지에 도착하면 허리 키나 될까 하는 나무 숲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한 뼘이라도 바람을 피해 텐트를 치려고 신경을 쓴다. 왜냐하면 허리 키 정도의 나무라도 바람막이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 늦게까지 바람이 강하게 불지는 않지만 초저녁에는 제법 바람끼가 남아있다.
언제 맘 놓고 편한 자리에 텐트라도 칠 수 있을런지? 독사, 전갈, 독거미, 딩고 등 위험한 야생동물을 피해야 하는 것도 텐트자리 잡을 때의 고려사항. 이런 저런 경우를 다 생각하면 자리잡기가 정말 어렵다.
 
오늘 눌라보 서비스 스테이션에 도착할 계획이었는데 43km나 남겨 두고 야영을 하고 말았다. 나머지 일정이 하루 이틀 늦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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