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8~09/01
다시 동쪽으로, 짐은 늘었지만 마음은 가볍게
2011-06-01   박규동

1996년 10월 3일(木)     퍼스를 출발하여 노담(Northam) 카라반파크 도착. 카라반#3
                       퍼스 → 노담

아침식사 스테이크,식빵,계란후라이,짱아치,야채
07:20퍼스에서 출발 11℃ 맑음 바람없음
08:20휴식 14℃ 맑음 서풍약
09:20휴식 16℃ 맑음 서풍약
10:25휴식 17℃ 맑음 서풍약
10:40휴식 작은 과일가게 퍼스35km후방 간식 토마토,아이스크림 15.5℃ 맑음 서풍약 간식비 $4.25
11:25-11:40작은 마을에서 휴식 퍼스42km후방 버거롤,콜라 18℃ 맑음 서풍약 간식비 $5.25
12:30휴식 18.5℃ 맑음 서풍약
13:35-14:05 점심식사 트럭주차장 퍼스65km후방 식빵,스테이크,계란후라이,토마토,커피,오렌지쥬스 21.5℃ 맑음 서풍약
14:55휴식 23℃ 맑음 서풍중약
15:55휴식 21℃ 구름 서풍중약
16:15 휴식 21.5℃ 구름 서풍중
17:55 노담(Northam)도착
물품 구입 파 $1.69 귤1kg $1.69 요구르트1kg $2.19 요구르트2개$1.65 닭1마리 $4.99 식빵 $1.57 배추1/2 $0.99
노담 카라반 파크 남위:31°38.7′동경:116°42.0′
카라반 숙박비$25.00
저녁식사 닭백숙,밥,야채,짱아치

최고속도57.1
평균속도13.3
운행시간7.45.11
주행거리103.29
누적거리2821.3



퍼스에서 노담까지는 큰 산맥을 넘는다. 높이는 400-500m. 그런 고개를 몇 개인지 넘고 넘다 보니 100km를 달려와 노담에 도착하였다. 퍼스에서부터 바로 시작된 힐클라이밍이 10km 남짓, 오르고 내리길 수차례. 베이커스 힐을 마지막으로 다운힐이 10km나 있어서 신나게 내려오다 보니 노담이 불쑥 나타났다. 며칠 쉰 탓인지 고갯길을 힘겹게 넘고 넘으면서도 100km를 쉽게 온 것이다. 맞바람이 없는 덕도 본 셈이다.
 
세두나에서 눌라보 횡단 식량을 15일분을 준비한 것이 그냥 남아 있어 짐이 참 무거웠다. 언덕 오를 때마다 앞 1단 뒤 1단까지 써가며 올라왔으니깐 말이다.
그러나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전환이 된 것이다. 내 영혼이 내 마음을 받아 준 것이다.

천 년으로 무엇을 녹일 수 있으랴.
만 년으로 누구를 달랠 수 있으랴.
억 년으로 여인의 옷고름 하나 풀 수 있으랴.
겁으로 해탈의 끝이나마 잡을 수 있으랴.
물은 겁으로 태어나고 억 년을 흐르며 만 년으로 바위를 다듬는다.
천년으로 숲을 키우고, 안으로 안으로 해탈을 키우며 겁을 짓는다.
H2O
수소와 산소. 그러나 인생 백 년으로 무얼 가꿀 수 있을까?
그저, 바퀴나 굴릴 수 밖에!
자전거 바퀴.
3.14159`--


1996년 10월 4일(金)     탬민(Tammin) 호텔
                       노담 → 탬민

아침식사 식빵 햄 계란후라이 스프
06:50노담에서 출발
08:00휴식 귤 11℃ 구름 바람없음
09:00휴식 비스켓 치즈 14℃구름 남동풍중
10:00-10:25식사 로드하우스 노담28km후방 햄버거 커피 식사비 $11.00
11:20휴식 귤 17℃ 구름 남동풍중
12:10휴식 19℃ 구름 남동풍중약
13:00-13:55 점심식사 도로옆 탬민26km전방 햄 식빵 계란후라이 토마토 귤 커피 17.5℃ 구름 남동풍중
14:40 휴식 21℃ 구름 남동풍중약
15:20 휴식 귤 21.5℃ 구름 남동풍약
16:25 탬민(Tammin)도착 탬민호텔 남위:31°38.6′동경:117°29.4′
숙박비 $45.00
저녁식사 배추국,햄스테이크,밥,야채,짱아치
 
최고속도40.7
평균속도11.7
운행시간6.56.55
주행거리81.88
누적거리2903.2

퍼스를 떠난지 이틀.
낮은 구릉을 여러 차례 넘으며 81km 거리를 2시 3시 방향 바람을 맞으며 왔다. 그래도 평균 10km/h는 내달릴 수 있는 약한 맞바람, 그러나 체력소모가 커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하늘을 온통 덮은 뭉게구름이 비를 만들건지 모르겠다.
 
모처럼 호텔에 들었다. 가끔 하는 문화생활이라 고마운 마음이 든다.
 
꽃,꽃,꽃... 지난 번에 내린 비로 모든 봄꽃이 들판에 활짝 피었다. 꽃길 따라 바퀴 굴리는 재미를 누가 알까! 나머지 1,800km,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정성으로 가야지.



서쪽으로 나아갈 때나 동쪽으로 가는 지금이나 호주는 대륙이다.
펄 벅의 여자는 "대지"다. 여자는 언제나 대륙이다. 그렇게 넓은 모성과 비가 내리지 않아도 축축한 땅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 꽃을 피우고 새가 노래하고 짐승들이 뛰어 놀 수 있는 품안, 그 품안에 사랑과 평화를 가꾸는 것이 대지이다.
대륙 호주는 여자이다. 여자가 있어서 남자들은 그녀들을 위해 밖으로 나가 일하고, 초저녁에는 아내와 어머니의 가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뭄이 들고 바람이 불어도 어머니는 젖을 짜서 아이들을 키운다. 대륙은 언제나 어머니처럼 존재를 키워 내고 있다.
다 큰 나도 돌아갈 땅이 있어야 하고, 아들 창민이도 찾아갈 섶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지이다.
가슴주머니에 담아 아기를 키우는 캥거루가 호주에서는 대지처럼 위대하지 않은가!
여인이여! 대지여! 원주민들의 어머니여! 희망을 주소서.

탬민 행정구, 인구 600명,면적 1,068km2,
초등학생이 스쿨버스를 타고 40km 씩이나 통학을 한다. 그도 아니면 무선통신으로 가정에서 교육을 받든가, 부모에게서 교육을 받는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의례 도시로 나가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진학한다. 그도 아니면 소나 말, 양떼들과 어울려 시골을 산다.
아웃백에는 100k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는 이웃이 별로 없다. 그 소년, 소녀들이 청년이 되면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제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가시나무새 소녀의 안타까움이 아웃백 도처에서 발생할 것이다. 아웃백의 남자나 장터에서 팔리기를 기다리는 양떼나 혹은 여자들도 서로 제 때에 짝을 만날 수 없으니깐 아웃백 사람들은 자꾸만 도시로 나아간다. 아니 공부하러 간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호텔 매니저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저녁을 먹은 뒤 창민이와 포켓볼 게임을 하였다.

 

1996년 10월 5일(土)     야영. 도로변(서던크로스 95km전)
                        탬민 → 켈러버린 → 메리딘 → 야영(메리딘 13km후)

아침식사 햄 계란후라이 식빵 스프
07:00탬민에서 출발
08:00휴식 커피 14℃ 맑음 동풍중약
09:10-09:40켈러버린(Kellerberrin)에 도착 간식 햄버거 우유 콜라 22.5℃ 구름 동풍중약 간식비$10.60
10:30휴식 19℃ 구름 동풍약
11:30휴식 21℃ 구름 바람없음
12:40-13:20점심식사 도로옆 메리딘17km전방 햄 커피 식빵 계란후라이 22℃ 구름 바람없음
14:15휴식 20℃ 구름 바람없음
15:00-16:00메리딘(Merridin)물품 구입 구입품 커피우유600ml 2개 $2.50 식빵 $2.08 요구르트4개 $2.98 귤870g $3.47 셀러리 $0.88 시금치 $1.75 미네랄물2ℓ$2.09
17:00도로옆에서 야영 남위:31°26.5′동경:118°24.1′
저녁식사 시금치국 야채 짱아치 햄스테이크 밥
 
최고속도23.1
평균속도13.0
운행시간7.26.02
주행거리96.93
누적거리3000.1



총주행거리가 3,000km를 넘었다.
우리의 도전 목표는 눌라보대평원을 포함해서 1,800km가량 남아있다.
 
오늘은 자그마한 저수지 옆에 텐트를 쳤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웅덩이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탁하고 황토 물 같은 것을 모아서 어디에 쓸 건지?
 
오전에 잔뜩 만들어졌던 뭉게구름이 저녁이 되면서 말끔히 지워지더니, 고운 하늘에 은하수와 십자성 그리고 숱한 별이 나타났다. 내 영혼의 고향 별도 떴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미지와 이미지들!

봄바람은 참 걷잡을 수가 없다. 사내와 계집도 봄바람이 들면 천방지축이 되듯이 누가 피운 바람 이길래 동서남북 길도 없이 불어대는지 모르겠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꽃향기, 까무러칠 것 같은 향내, 그래서 봄에는 봄바람이 나는지 모르겠다. 꽃 향내에 이끌려 97km를 달려왔다.
향내!
 
09시에 켈러버린(Kellerberrin)의 로드하우스에 들려서 햄버거를 사 먹었다. 부족한 영양을 틈틈이 채우는 기회다. 로드하우스는 두 늙은 부부와 삼십 후반의 아들, 세 식구가 꾸려 가고 있었다. 아웃백 사람들의 그 무표정, 가면 가고 오면 오라는 태도, 넓은 대륙에 살면서 세상 넓은 줄 모르는 사람들. 더러는 동양인을 기피하는 말투. 아웃백이 사람들의 영혼까지도 황폐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서쪽으로 향해 달릴 때에는 오른 쪽 뺨이 검게 탔었다. 동쪽으로 가자니 왼쪽 뺨이 탄다. 호주는 남반구라서 북쪽으로부터 햇빛을 받는 것이다. 양쪽 뺨이 한결같이 원주민들처럼 검붉어지고 있다.

잠이 들기 전에 손톱을 깎았다. 발톱도 다듬고 했다.
어렸을 때, 막내 이모는 내 손톱을 가위로 잘라 주었다. 손톱깎기 기계가 없던 시절, 가위는 손톱을 깎고, 옷감을 자르고, 고추를 썰어 실고추도 만들고 했었다. 이모는, 막내 이모는 가끔 사내인 내 손톱에도 봉숭아 물을 들여 주었고, 주홍색 봉숭아 손톱은 한여름이 가도록 물이 빠지며 자라고, 자라고 했었다. 그 이모가 보고 싶다.
이모는 그 때 스무 살이 넘었었고, 봄바람이 났었다. 안동 36사단 청년 장교가 스리쿼터를 몰고 와서 이모를 태우고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곤 그랬었다. 그 이모는 노래도 잘 불렀었고, 봄나물을 캐어서 쌀을 띄우고 죽도 잘 끓였었다. 청년 장교는 제대를 하더니 소식도 없이 그의 고향으로 가 버리고 이모는 임신을 했었다.
그 청년은 자기 아들을 왜 두고 갔는지? 이모는 왜 그 아이를 낳아서 길러야 했는지? 어린 나이에 참 안타까웠었다. 그 이모가 보고 싶다. 그 때에는 나도 마음을 여간 끓인 게 아니었었다. 마음이 끓으면 애간장이 탄다. 애간장이!
이모는 그렇게 끓는 마음에 애간장을 태우고 태우다 서른 살에 요절했다. 보고 싶은 이모!


견인비용이 차량가격보다 더하기 때문에 고장난 차량은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지기도 한다. 그렇게 버려진 고물 차량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1996년 10월 6일(日)     서던크로스. 카라반파크 카라반
                        야영 → 카라빈 → 보달린 → 서던크로스

05:20 0℃ 맑음 동풍약 아침식사 햄 식빵 계란후라이 커피 스프
06:40야영지에서 출발
07:30휴식
08:30휴식 귤 10℃ 맑음 북동풍중약
09:20-09:55카라빈(Carrabin)간식 햄버거 우유 15℃ 맑음 동풍중약 간식비 $12.60
10:55휴식 귤 21℃ 맑음 동풍약
11:35 보달린(Bodallin)도착 27℃ 맑음 동풍약 물1.5ℓ$3.00
12:45휴식 요구르트 28℃ 맑음 동풍약
13:50-14:30점심식사 도로 옆 서던크로스23km전방 28℃ 맑음 동풍약
15:20 휴식 28℃ 맑음 바람없음
16:25서던크로스(Southern Cross)도착
물품구입 양배추 식빵2개 바나나4개 귤6개 우유2ℓ 물2ℓ $18.90
서던크로스 카라반파크 남위:31°13.8′ 동경:119°20.3′
카라반 숙박비 $25.00
저녁식사 야채볶음 된장국 밥 짱아치 야채
 
최고속도29.5
평균속도13.3
운행시간7.25.48
주행거리99.17
누적거리3099.3

서던크로스(Southern Cross)는 우리말로 남십자성을 이른다. 오늘 도착한 마을 이름이지만 남반구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별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가 북극성을 보듯이. 남십자성은 호주 국기에 유니온잭과 함께 새겨진 별이며 호주의 상징이다.
 
오늘은 일요일, 어디를 가나 일요일은 상가가 죽은 듯 조용하다. 모든 가게는 문을 닫는다. 어쩌다 식료품가게가 낮 시간에 잠깐 문을 여는 것 말고는 모두 가정에서 쉬는 날이다. 사무실, 가게들, 심지어 버스도 다니지 않는 게 호주다.
 
서던크로스의 다운타운도 모두 문을 닫고, 겨우 식료품 가게가 비디오점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문이 열려 있어 식빵, 양배추, 우유, 물, 귤 등을 사서 카라반파크로 왔다.
 
96km를 주행하였다. 계속 오르내리는 길. 15km, 20km마다 긴 고개를 넘었고,고개를 넘고 나면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오르내리는 주름의 높낮이가 퍼스가 있는 서쪽보다는 조금씩 낮아지고 평평해져 간다.

오전에 12시 1시 방향 바람, 깨끗한 하늘, 일요일인지도 모르고 바쁘게 페달을 밟아 왔다. 누가 기다리기나 하듯이!

아침기온 0℃. 출발에서 두어 시간은 잔뜩 껴 입은 체로 주행하다가 먼저 파일자켓을 벗고, 다음 조끼를 벗고,파일 티 셔츠의 앞 지퍼를 모두 내린다. 최고 28℃, 4시가 지나면 다시 조끼를 입고, 다섯 시에는 야영이 된다.
카라반파크에 도착하여 카라반을 배정받고는 샤워와 세탁을 한다. 저녁식사준비, 식사 후에는 바로 취침.


금광도시 칼구리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관 500km가 철도와 도로 사이를 흐르고 있다

웨스턴오스트랄리아 주 동남쪽에서 발달한 고기압 때문에 비교적 강한 동풍이 불고 있다고 TV뉴스에서 기상예보를 한다. 거참, 또 맞바람이라니!

주말이 되면 호주국민들을 열광시키는 호주축구 구경에 나도 맛이 들었다. 축구의 원조쯤 되는 경기인데 올해 100년이 되었다고 한다. 보통 축구장 크기에 골 문 기둥이 4개이며 가로막대는 없다. 가운데 문에 들어가면 6점, 양쪽 바깥 문에 들어가면 1점, 공은 럭비 공처럼 타원형이며 골키퍼는 없다.
공은 발로 차도 되고, 손으로 패스해도 된다. 물론 태클은 럭비경기처럼 무자비하다. 공을 들고 달려도 되지만 10m 이전에 패스를 하던가 아니면 드리볼을 해야 한다.
손에서 손으로 패스한 공은 누가 잡아도 태클을 면할 수 없다. 단, 발로 차서 패스한 공을 정확하게 받았을 때에는 누구도 태클을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상대방 골문 앞에서 발로 차 보낸 공을 누군가 정확하게 받았으면 그 공을 잡은 선수는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그 공을 차서 골인을 시킨다든가 자기편 선수에게 패스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차서 패스한 공을 꼭 잡으려는 자기 팀과 상대 팀 간에 잡거니 못 잡게 하거니 격투가 벌어진다.
아마 가장 원시적인 축구경기가 아닌가 싶다. 오직 호주에서만 경기를 하고, 국민 스포츠처럼 되어있다. 각 도시와 주마다 홈팀을 갖고 있으며 기업체의 지원을 받는 프로 경기이다. 경기 도중에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예사이지만 심판도 관중도 눈 여겨 두지 않으니 자연히 큰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농구경기처럼, 경기가 멈추면 시간도 멈춘다. 한 쿼터에 15분씩 네 쿼터로 경기한다.
복장은 럭비 선수와 비슷하다. 그러나 럭비보다 더 난폭하고 빠르고, 다이나믹하다. 도중에 부상당하는 선수들이 여럿인데도 선수교체만 할 뿐 의례 그러려니 한다. 축구경기가 아니라 축구전투라는 표현이 적당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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