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수탑만 있는 마을 밍가리
에디터 : 박규동

1996년 9월 15일(日)     야영. 밍가리(도로변)
                    브로큰힐 → 콕번 → 밍가리

아침식사 뼈국물,밥,짱아치,야채,우유
07:00 15℃ 구름
07:15브로큰힐에서 출발
08:20휴식
09:20휴식 우유
10:20휴식 오렌지쥬스
10:50-11:40식사 쉼터 브로큰힐39km후방 식빵,스테이크
12:10-13:10콕번(Cockburn)도착 간식 콜라,땅콩바 간식비$5.80
13:10사우스오스트랄리아 주로 진입
14:00휴식 우유
14:45-15:00식사 도로옆 브로큰힐60km후방 식빵,스테이크
15:45휴식
16:00밍가리(Mingary)에서 야영 남위:32°07.7′동경:140°44.5′
저녁식사 된장국,스테이크,밥,짱아치,야채,계란후라이

최고속도31.1
평균속도11.4
운행시간6.22.21
주행거리72.86
누적거리1763.4

뉴사우스웨일즈 주와 사우스오스트랄리아 주 경계선 마을이다. 경찰지서 건물하나, 보더게이트 로드하우스 건물하나, 길 건너 공중전화박스가 하나있는 콕번(Cockburn)을 지나왔다.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하도 고생이 많았더래서 사우스오스트랄리아 주에서는 순항을 기대해 본다.

16시에, 건물이 없는 간이 기차역 밍가리에 도착하여 집들도 보이지 않는 마을 밍가리의 낡은 급수탑 옆에서 야영하였다. 인디안 퍼시픽 특급열차가 지나가며 기관사가 길게 기적을 울리며 손을 흔들어 준다. 평원을 달리는 기차를 따라 온 바람이 잦아들더니, 황혼은 지평선에서 왜 그리 아름다운지!


사우스오스트랄리아 입구

2시,3시,4시 방향의 바람을 맞으며 71km를 왔다.
지도에 마을이 점 찍혀 있고 동네 이름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살거나 마을이 옹기종기 형성돼 있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가 보아야 하고, 가 보았자 필요한 식료품을 아무 것도 구할 수 없거나 집도 절도 없는 곳이 허다하다. 그래서 일주일치 정도 식량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며 물은 20ℓ이상 갖고 다녀야 한다.

브로큰힐을 넘어서면서부터 풍광이 다소 바뀌었다. 아웃백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다. 더욱 더 사막화된 땅. 밀도 목초도 심을 수 없는 땅이 나타난다. 요즈음 한두 달이 그래도 작게나마 비가 내리고, 그 힘으로 녹색 기운이 있어 풀이 꽃도 피우고 수분 저장도 하고 그러는 거란다. 사막 식물의 강인함이여!

인디언퍼시픽 특급열차를 타고 싶었다.
십수 년 전에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읽은 기사가 생각난다. 그 기사를 읽고 나서는 내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이 여행만은 꼭 해보고 싶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인디언퍼시픽을 타고 일주일 짜리 호화 기차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그간 내가 벌어놓은 재산을 다 써도 좋을 것 같았다.
500km의 직선 구간이 있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5천Km나 줄달음치는 여객열차. 퍼스와 시드니, 시드니와 퍼스를 오가는 그 인디언퍼시픽 특급열차에서는 끼니가 되면 식사를 미리 주문 받으러 다니는 차장의 친절이 있고, 2인 특실을 잘 골라 잡으면 피아노까지 있다니, 샤워실은 물론 미용실, 오락실, 레스토랑이 있는 그런 특급열차를 타고 싶었는데...
그 인디언퍼시픽 특급이 우리 자전거 행렬을 마주 달리며 기적을 울리고 격려를 해준다. 횡단이 끝나고 돌아올 때 시간이 나면 타 봐야겠다.



오늘 아침, 출발할 때에 우리를 유심히 바라보며 길을 지나던 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출발 후 15km쯤 지나 왔을 때 그 할아버지가 차에 할머니를 태우고 와서는 할머니와 함께 손을 흔들며 격려를 해 주고 돌아갔다.
할아버지의 말씀으로는 "아내, 할머니에게 꼭 보여 주고 싶어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하여 당신들을 만나러 여기까지 왔다"고 하신다. 오렌지도 두 개 주셨다.
아! 그런 게 사랑일까?
그 할머니는 전생의 어떤 인연으로 이승에서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9월 16일(月)     야영. 도로변(피터보로우 140km전)
               밍가리 → 올라리 → 야영(피터보로우 140km전)

아침식사 식빵, 베이컨
06:50밍가리에서 출발
07:50휴식 오렌지쥬스 22℃ 맑음 북동풍중
08:50휴식 파워바,우유 25℃ 맑음 북풍중
09:50휴식 28.5℃ 맑음 북서풍중
10:50휴식 31℃ 맑음 북서풍강
11:40-13:00 올라리(Olary) 점심식사 로드하우스 닭고기,콜라 식사비$22.90 물10ℓ$4.50
13:45휴식 34℃ 맑음 서풍강
14:40휴식
15:40휴식 33℃ 맑음 서풍강
16:15도로옆에서 야영 피터보로우140km전방
남위:32°20.7′동경:140°10.0′
저녁식사 된장국,스테이크,밥,짱아치,야채
 

최고속도18.5
평균속도9.2
운행시간6.42.09
주행거리62.29
누적거리1825.7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가? 누가 피우는가?
나비의 날개 짓인가, 태양의 불기둥인가, 훈민정음의 ㅂ인가, 여인의 치마폭인가, 아니면 지난날 내가 피웠던 바람이 지금 서풍이 되어 다시 불어오는가? 북서풍은 왜 뜨거울까? 왜 물을 많이 마시게 할까?   
야속한 북서풍!
야속한 바람.

인구 8명이 살고 있다는 올라리(Olary)의 간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의 조아니 양이 친절하게 아웃백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빗물조차 모아서 쓸 수 없는 지역이라, 10ℓ에 4불 50센트씩 주고 샘물을 사야했다. 사막의 물 인심이다..그러나 물은 생명이다.

11시경에 도로변에서 휴식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차량 두 대가 차를 세우고 찾아와서 격려를 해주었다. 기념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을 포함한 두 가족은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단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무심히 지평선 너머로 석양은 지고, 다짜고짜 사막에 어둠이 내린다. 어둠이 지친 어깨를 누르기 시작하면 피로와 외로움이 닥친다. 저녁식사 후에는 나의 아픈 무릎을 창민이 대장이 맨소래담 크림으로 마사지를 해준다. 아들의 손이 약손인가!

기차소리, 로드트레인의 굉음. 잠을 설치게 할 것이다.
은하수는 고향의 낙동강처럼 남북으로 이어져 흐르고, 저녁의 초승달도 잠깐. 저 달이 만월이 되면 추석이다. 조상님들 보살펴 주소서!
바람은 누가 피우는가? 뱀의 혓바닥인가, 원주민의 피리 디젤리두의 증폭 음인가, 펭귄의 날개 짓인가? 야속한 북서풍.



 

9월 17일(火)     야영. 도로변(피터보로우 78km전)
               야영 → 만나힐 → 얀타 → 야영(피터보로우 75km전)

06:00 6.5℃ 맑음 바람없음
아침식사 베이컨,식빵,계란후라이
06:50 야영지에서 출발
07:45휴식 19℃
맑음 바람없음
08:45-09:15마나힐(Mannahill)로드하우스 간식 콜라,초코렛,감자칩 간식비$6.60
10:15휴식 오렌지쥬스 21℃ 맑음 서풍약
11:15간식 도로옆 얀타 28km전방 식빵,베이컨,오렌지쥬스 22.5℃ 맑음 서풍중약
12:17휴식 파워바 25℃ 맑음 서풍중
13:17-14:15점심식사 도로옆 얀타 10km전 스테이크,식빵,오렌지쥬스 25.5℃ 맑음 서풍중
15:15-15:45얀타(Yunta) 감자칩,커피 간식비$4.50
16:35휴식 23.5℃ 맑음 서풍중약
17:00 도로옆에서 야영 남위:32°38.0′동경:139°29.2′
저녁식사 된장국,스테이크,밥,짱아치,야채 
 

최고속도20.5
평균속도10.5
운행시간7.09.28
주행거리75.29
누적거리1901.0

브로큰힐에서부터는 구릉을 계속 넘나들며 왔다. 오르고 내리는 길의 연속이다. 땅이 주름잡혀 커다란 파도를 이룬 모양이다. 프린더스산맥의 어슴프레한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 포트오거스타까지 이어질 것 같다.

얀타 또한 대여섯 집이 모여있는 아웃백 마을. 주유소가 셋, 호텔, 카페, 기차역 그게 전부다.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했다. 카페 주인은 주유소도 함께 하고 있어서 정비복을 입은 체 감자칩을 요리하고, 친절을 베푼다. 듀얼서스펜션이 있는 내 자전거에 관심이 있다면서 이것 저것 물어 온다. 얀타가 그려진 차량스티커도 선물로 한 장씩 줘서 받았다. 기념 촬영을 했다. 뚱뚱하긴.

얀타(Yunta)를 조금 지난 곳이다. 바싹 마른 나무, 황토 그리고 캥거루가 함께 뛰어 노는 기찻길과 찻길 사이의 벌판에 텐트를 쳤다. 오늘은 바람의 강도가 조금 낮아져서 약 70km를 운행하였다. 내일까지 피터보로우(Peterborough)에 닿아야 할 터인데 식량이 부족하다.
며칠 후에 닿게 될 포트오거스타부터는 남쪽에 바다가 가깝다. 남극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불지, 북쪽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이 더 강할지. 어쨌든 그 1,200킬로미터의 눌라보대평원이 기다리고 있지 아니한가!


막 된장 한 통을 다 먹었다. 땀을 흘리고 갈증이 심해도 저녁에 된장을 풀어 국을 끓여 마시면 갈증이 싹 가신다.
브리즈번의 한국식품에서 된장 2통, 고추장 1통, 젓갈 2병을 사 왔는데 젓갈과 된장 1통을 먹었고 고추장 반 통 된장 한 통이 남았다. 아껴 먹어서 끝날 때까지 된장국을 끓여 먹으며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매일 저녁 밥을 해 먹고 서울에서 싸준 장아치, 미역국, 멸치조림 등을 밑반찬으로 함께 먹는다. 스테이크와 곁들여서.

지평선이 사방으로 펼쳐진 사막. 그 한가운데에 평방 1m짜리 방수포를 깔고 우리의 저녁 식탁을 장식한다. 새들의 지저귐과 황금빛 석양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만찬은 지상최고의 디너 쇼가 된다. 무엇으로 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주님이 곧 오신다"고 써 붙인 여러 개의 팻말을 보았는데 아마 이 자리가 주님께서 다시 돌아오신다면 선택된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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