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흘리면 바람에 모두 증발한다.
에디터 : 박규동

1996년 9월 18일(水)   피터보로우 카라반파크 카라반 #3
                    캠프 → 우들라위라 → 피터보로우

05:50 3℃ 맑음 바람없음
아침식사 베이컨,식빵,계란후라이,커피
06:50캠프지에서 출발
08:10휴식 18.5℃ 맑음 바람없음
08:40휴식 바나나,초코렛 27℃ 맑음 북풍약
09:30휴식 초코렛,커피 25℃ 맑음 북풍약
10:30-10:48휴식 감자칩,오렌지쥬스 26.5℃ 맑음 북풍중약
11:40휴식 27℃ 맑음 북서풍중강
12:10-12:30우들라위라(Oodlawirra)간식 로드하우스 콜라600ml 2개 오렌지쥬스2개 $7.60
12:35과일검문소 통과
13:30휴식 29.5℃ 맑음 북서풍강
14:20휴식 오렌지쥬스 29.5℃ 맑음 북서풍강
14:55휴식
15:50피터보로우(Peterborough)에 도착 물품구입 오렌지쥬스 2ℓ $2.99 커피우유 1 $2.09 요구르트 6개 $3.57 식빵 $1.29 콜라 1.25ℓ $1.69 당근1kg $0.78 파 $0.99 귤1kg $1.59 상치 $1.79 고기2kg 호박4개 계란12개 바나나4개 $31.70
피터보로우카라반파크 남위:32°58.9′동경:138°50.1′
카라반 숙박비 $25.00
저녁식사 된장국,스테이크,밥, 장아치,야채,귤,우유
20:10 16℃ 비 남서풍중약

최고속도40.4
평균속도11.2
운행시간7.10.17
주행거리80.61
누적거리1981.7

피터보로우 초저녁 풍경은 유별나다.
하늘이 하도 넓다 보니 한쪽에선 천둥이 치고, 한쪽에선 비가 내리고, 한쪽에선 쪽달이 떠오른다. 한편에선 구름이 고속촬영한 것처럼 바삐 움직인다. 지나가는 비라면 좋으련만.

"여보 당신하고 나하고 궁합을 물어보았더니 1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찰떡궁합이래. 내생에서도 다시 만나게 될거래!"
"그래요, 궁합은 어디서 보았는데요?"
"꿈에서!"
꿈을 그렇게 꾸며 사막을 가고 있다. 야영 텐트에서 짬짬이 짓는 꿈. 그 꿈나라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나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내 영혼은 전생의 인연과 내생의 기억을 더듬으며,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을 나누어야 할 사람들을 쫓아 꿈나라를 떠돈다. 우주와 우주를 넘나들고, 은하수와 태양계를 오가며, 별과 별에서 만났던 인연을 헤아리다가 고향 뒷집 옥이를 만나기도 하면서 꿈을 한없이 키운다. 꿈나라에서는 영혼이 결코 피곤을 모른다.

과일검문소에서 사과를 압수 당했다.

우들라위라에서 간식을 하고 나서, 공기탱크를 빌려 타이어에 바람을 보충해 넣었다. 그리고 나서 과일검문소를 통과하였다. 검문소를 통과하다가 먹다 남은 사과 하나를 압수 당했다. 과일에 묻어오는 과일파리(fruitfly)를 단속하기 위한 검문이기 때문이란다.
사람을 검문하는 것이 아니고, 파리를 검문하는 것인데 이렇게 철두철미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과일파리가 옮겨 다니며 과일 생산에 상당한 지장을 주는 모양이다. 몇 백km 전부터 대형 간판을 세우고 과일을 갖고 오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는데 우리가 깜박했다. 자동차 같으면 한 두 시간 후에 검문이 있겠구나 하고 준비를 하는데 우리는 벌써 이틀이 지난 뒤라 까맣게 잊어 먹고 있었다.
검문소 직원이 꽤나 친절하게 설명하고 사진까지 함께 찍어 주었다. 미리 먹어 버릴걸 그랬다고 창민이 대장이 아쉬워 한다. 값이야 얼마되지 않지만 무게를 보아 브로큰힐에서 실어온 공이 있어 좀 아까운가 보다.

그 동안 타고 오던 32번 바리어하이웨이는 14km 전방에서 남쪽 에들레이드로 가고 우리는 56번 하이웨이를 타고 오른쪽으로 북서진하여 이곳 피터보로우를 거쳐 포트오거스타로 향해 간다.
포트오거스타에서는 서쪽으로 난 외길 에어하이웨이(Eyre Highway)를 타고 2천 몇백km를 더 가야한다. 사막이 약 2천km란다. 하기야 지금까지도 사막이었지만.언뜻 보면 이곳 지형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과 흡사하다. 군데 군데 서 있는 죠슈아트리대신 소나무 비슷한 바늘 잎 나무가 다를 뿐(이름을 모르겠다). 얕은 구릉들과 황토 빛 사암 등이 그러하다.



56번 도로를 접어들면서 12시 방향 맞바람을 모질게 맞게 되었다.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가기가 어려위서 내려서 끌고도 가 보았지만 효과가 없어서 500미터를 걷다가 다시 올라타고 페달링을 하였다. 피터보로우 7킬로미터 전방의 고갯길은 맞바람과 함께 어찌나 힘이 들었던지. 오늘처럼 자전거 뒤에 끌려오는 트레일러가 무겁게 느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피터보로우는 해발 540m에 있는 오래된 타운이다. 인구가 2,300명, 다운타운이 제법 활기차다. 고도가 높고 구릉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기상변화가 심해서 가끔 비가 내리는지 밀밭이 초원처럼 넓게 넓게 펼쳐져 있고, 초원 사이 사이에는 풀꽃이 만발해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말을 해 주었다. 우리가 가장 좋은 시기에 호주대륙을 여행한다고. 풀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봄맞이 계절이라고.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야.

물을 많이 마셨다. 14시 이후에는 아주 힘이 들었다. 바람이 뜨겁다. 태양은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그 뜨거운 바람은 돌풍으로 변해 다시 대륙을 휩쓴다.
열풍.
입을 열면 금방 건조해진다. 둘이서 오늘 마신 음료수는 물 8ℓ, 우유 1ℓ, 콜라 2.4ℓ, 커피 1ℓ, 된장국 2ℓ. 몸 안의 수분이 모두 바람따라 날아가 버린 것 같다. 땀은 흘리자마자 증발해 버려서 흔적조차 모르겠다.

오늘은 피터보로우 카라반파크에서 카라반을 세내어 쉬고 있다. 며칠만에 샤워하고 밥짓고, 빨래하고, 시장을 보았다. 3-4일에 한번씩 타운에 닿으면 하게 되는 의례 행사다.

저녁에도 계속 비가 내린다. 천둥번개까지. 텐트에서 이 비를 맞게 되었다면 얼마나 처량했으랴!

자전거는 앞 타이어를 모두 바꾸었고, 트레일러도 타이어 4개와 튜브 4개를 모두 바꾸었다. 펑크가 셀 수 없이 많이 난다. 타이어와 튜브를 모두 바꾸고 나니 어제 오늘은 무사하다. 뒷 타이어도 며칠 내로 또 바꾸었으면 좋겠다.

어제는, 1시 2시 방향 바람이 얼마나 세던지 바람에 밀려서 자전거를 탄 채로 두 번이나 넘어졌다. 평지에서 앞 1단 뒤 2단까지 써야 하는 참담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륙에서 부는 바람은 무게가 실려 온다. 그리고 무엇인가 단단한 느낌이다.
맞바람에 보태어 로드트레인이라도 마주 지나가기라도 하면 그 때에는 돌바람(적당한 표현이 없어서 돌덩이처럼 단단한 바람이라는 뜻)이 뺨을 때리는데 눈물이 쑥 날 지경이다.


9월 19일(木)     피터보로우 카라반파크 카라반 #3
                피터보로우에서 휴식

밤새 비
08:45 12℃ 가끔 비 남서풍강
09:30 3.5℃ 가끔 비 남서풍약
카라반파크에서 하루 연장하여 쉼
카라반 숙박비 $25.00
물품구입 우유 1ℓ $1.35 햄 $3.26 요구르트 4개 $2.38 닭 1마리 $5.49 맥주2캔 $2.70

저녁 9시 30분 기온 3.5℃. 먹고 자고 그렇게 하루를 쉬었다.
어제 저녁에 이어 오늘 아침에도 비가 뿌리고 바람이 강하다. 남서풍으로 강하게 분다.
비가 내리고 더하여 바람이 몰아치기 때문에 하루 쉬기로 하였다. 고도와 습도가 높은 탓에 추위와 피로를 더 느끼는가 보다.

란(Rann) 박물관

낮에 우체국에 들려서 여벌로 갖고 온 옷가지 등 필요없는 물품들을 상자 두 개에 넣어 브리즈번으로 부쳤다. 우체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란(Rann)박물관을 구경했다. 지난 100년 이내의 발동기, 축음기, 농기구, 재봉틀, 다리미 등을 모아 놓았으며 대부분이 작동되고 있어서 그것을 소장하고 소개하는 에릭 란씨의 성의에 놀라움이 앞선다.

몸이 추위 때문인지 몸살끼가 있다. 창민이 대장에게 걱정 끼치지 않아야겠는데 말이다. 포트오거스타까지도 이렇게 먼 길이다. 정말 멀긴 멀다.

07시 10분에 아내와 통화했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함께 했던 34기의 소모임 4회사 회원들 소식을 전해준다. 신흥성, 한두석, 구연찬, 천영신, 이면호, 이경순, 이찬국, 김인식, 원관희, 이상용, 박규동.
한두석 사장의 퇴임 소식이 마음에 걸린다. 연장자이신 신흥성 상무가 현직에서 물러나더니, 나이 순서로 한 분, 한 분 경영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작으나마 내 회사를 갖고 있는 것이 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그보다도 나이가 되면 모두 스스로 비워 버리는 게 상책이라고 배웠는데 말이다. 버릴 걸 미리 던져 버리는 대범함이 나이에 따라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경영권, 열심히 일해 온 사람은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더구나 쉴 준비도 되어 있지 아니한 상황에서는 꼭 사회로부터 소외 되어지는 기분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일을 한 세대가 지금 한국의 50대들이 아니던가! 그들이 지금 사회로부터 소외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에 단련되어 일하기 좋아하는 그 열정을 어디에 쏟아야 좋단 말인가? 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일 싫어하는 신세대들에게 대한민국을 맡기기에는 우리가 아직 젊은 게 아닐까?

호주에서 매일 만나는 여행자들은 거의 모두 퇴직한 노부부들이다. 그들이 자연공간으로 되돌아와 영혼과 함께 노년 생활을 알뜰하게 즐기고 다니는 것을 바라보면, 한편으로는 그 또한 배울 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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