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천국을 동시에 경험한 나라 파키스탄
에디터 : 이호선

2007년, 11월16일. 나는 드디어 계엄령 하(下)에 있는 파키스탄의 와그하 국경(Wagha Border)을 넘는다. 국기에 그려져 있는 날카로운 초생 달이 나의 가슴에 비수처럼 다가온다. 어째, 어울리지 않는 평화스러움이 나를 더욱 긴장시킨다. 자, 가자! 나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江)을 넘어버렸다. 이제는 눈 딱 감고 앞만 보며 맹렬히 달리는 것뿐이다.

나는 인도의 한국영사관에서 파키스탄여행을 건너뛴다는 각서를 썼지만 파키스탄은 유럽으로 가는 대륙횡단 자전거여행자에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
영사님껜 죄송하지만, 11월 16일 나는 '와그하' 국경(Wagha Border)을 넘는다. 100m사이의 양측국경관리들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인도 측은 비꼬는 듯, 가식적인 반면, 파키스탄 측은 정직하고 순수해 보인다.
국경을 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고, 짐 검사조차 없이 그대로 통과한다.

파키스탄의 도로가 인도보다는 좋아 보인다. 처음으로 만난 라호르(Lahore)시에 들어가서, 빠져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델리의 그것처럼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도로가 델리보다는 넓고 운전사들도 경적을 덜 울려대는 것 같다.
시내 한 복판에 서있는 경찰에게 길을 묻자, 다짜고짜 나에게 여행허가증제시를 요구한다. 행인들조차 외국인인 내가 어떻게 국경을 넘어 들어 왔는지 납득할 수가 없단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파키스탄은 결코 테러리스트들로 가득한 악의 땅이 아닌, 선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임을 전해달라고 거품을 흘리며 신신당부를 한다.

파키스탄은 지금 계엄령 하에 있다.(2007, 11월3일 발동) 도로의 곳곳엔 '무샤라프'의 초상화가 들어있는 대형 현수막이 계속되고 AK47소총으로 무장한 경찰과 군인들이 거리에 즐비하며 경찰순찰차들은 낮과 밤을 안 가리고 쉴 새 없이 시내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고 지나간다.
파키스탄 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는 형제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전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크리켓게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숙적인 것 같다. 내가 파키스탄에 도착한날, 파키스탄크리켓 팀이 여태껏 그래왔듯이 인도 팀에 또 졌다. 파키스탄 인들은 울분을 토한다.
펀자브와 파키스탄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무조건 미소와 악수를 청하며 호의적이다.

불면과 긴장 속에 복통설사를 계속하며 파키스탄에서의 나의 행진은 계속된다.
이란에의 국경, 타프탄(Taftan)이 가까워오면서 무인지경의 사막만이 끝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 황량함과 적막 속에서 나는 오히려 깊은 안도감과 내가 살아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동안, 나는 낮에는 수 없는 달려드는 도적들을 피해 필사의 질주를 해야 했고, 밤에는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출몰하는 탈레반 군사들 때문에 긴장 속에 날 잠을 자야했다.

'뮬탄(Multan)로드'를 달리다 한 식당에서 길을 묻는 나를, 한 사내가 백발에 풍채가 좋은 70대 노인에게 인도한다. 그의 성(姓)은 칸(Khan)으로 식당을 비롯해 주유소, 그리고 운수업까지 장악하고 있는 지역보스이다.
보스 옆엔 장전된 AK47소총을 든 '절대무언'과 '무표정'의 보디가드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보스가 일제승용차로 집에 돌아가자, 뒤를 이어 밤을 지키는 보스의 아들 주위를 또 다른 보디가드가 붙는다. 20대 초반의 막내아들, 마락(Marak)은 예리한 눈과 함께 아주 강건해 보인다.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겠다는 그는, 종교의 믿음 또한 두텁고, 아주 순수해 보인다. 그의 애인 또한 다른 지방의 대단한 호족의 딸인 듯하다.
파키스탄에선 총기소지가 합법으로, 경찰서에 등록만 하면 소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의 얘기는 계속된다.
"지금은 국가비상사태이기에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재산과 안전은 내가 지킨다."
식당과 주유소에서 일하는 말단 일꾼에서부터 보디가드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패밀리처럼 완벽한 신뢰와 복종이 느껴진다.
내가 만난 대다수의 파키스탄 인들은 희망 없는 내일에 절망하고 있다.
그들의 침소에서 밤을 보낸 후, 아침까지 얻어먹고 이들과 작별을 하고 뮬탄(Multan)을 향해 간다. '와그하' 국경에서 뮬탄까지가 500km이다. 도로에는 순찰차가 뻔질나게 돌아다닌다.

도로를 달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는다. 도로변에는 건조지대로 나무나 숲이 거의 없고 목화밭이 계속되고 있다. 너무 건조해 도로변은 먼지투성이이다.
뮬탄을 얼마 안 남기고 숲을 발견해서 텐트를 친다. 1리터의 물로 샤워를 하지만 아주 춥다.
새벽 5시경이면 어김없이 알라신에의 부름과 찬양이 스피커를 통해 온 마을을 깨우고 나를 깨운다. 새벽엔 무척 춥다.

도착한 뮬탄은 라호르보다는 작지만 역시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등교 길에 있는 많은 학생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는 달린다. 파키스탄 지도를 산후에, 본격적인 나의 행진이 시작된다.
뮬탄에서 무자파르가(Muzaffargarh)를 거쳐 데라 카지한(Dera Ghazikhan)까지 가는 길이 좋다. '데라 카지한'부터 길이 둘로 나뉜다. 많이 돌지만 하이웨이를 계속 달려 신드(Sindh)지방의 자코바바드(Jacobabad)를 거쳐 발로치스탄(Balochistan)의 퀘타(Quetta)로 가는 길과 또 하나의 길은, 지름길로 비록 지방도로이지만 똑 바로 달려 바로 퀘타로 가는 방법이다.

라호르(Lahore)에 이어 두 번째로 나타나는 큰 도시인, 뮬탄(Multan)을 향해 달리던 중, 나의 앞에 서는 도요타 캠리. 성공적인 비즈니스맨으로 보이는 중년신사는 자신의 아들에게   큰 선물을 주고 싶다며 나에게 자신의 아들과의 포즈를 간절히 부탁한다. 그 소년의 두 눈은 정말, 천사처럼 해 맑고 순수했다.

나는 지름길을 택한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갑자기 경찰순찰차가 나를 가로 막는다.
픽업트럭의 순찰차는 운전석과 조수석의 두 명 그리고 화물칸에 두 명으로 4명이 일개 조다. 네 명은 장전된 AK47소총을 가지고 있고 삽입된 탄창 옆에 또 하나의 예비탄창이 테이핑 되어 붙어있고, 그 중 '쫄따구'로 보이는 한 명은 예비탄창이 잔뜩 들어있는 탄창조끼까지.
그들은 내 자전거를 무조건 화물칸에 싣는다. 화물칸에서 나는 두 명의 경찰과 함께 차고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밤을 달린다. 도로의 곳곳을 훑고 있는 그들의 눈매는 아주 날카롭다.
나는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긴 국경선을 갖고 있는 발로치스탄(Balochistan)에 들어와 있다.
나는 산중마을인 라크니(Rakhni)경찰서에 인계된다.
경찰은 나에게 발로치스탄 지역은 아프가니스탄과 길게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아주 위험하기에 밤에는 절대 여행불가라고 한다.
나는 경찰서 앞의 한 식당에서 한 경관과 함께 짜빠티(파키스탄의 전통 빵으로 이들의 주식)와 콩과 닭의 수프를 먹는다. 마을 사람들은 산중마을에 뜻하지 않은 이방인의 출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나는 물차의 보급으로 살고 있는 그들의 철제물통에서 수도꼭지를 열어 졸졸 흘러나오는 물로 겨우 이빨과 얼굴, 그리고 손발을 닦고 비어있는 한 간이침대에 눕는다.
인간 하이에나, 그리고 탈레반의 전사들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되어 있다는 안도감으로 몸과 마음이 편하다. 옆에선 비번의 경찰들이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라크니'에서 수십km의 길은 아주 좋지만 주위는 거의 반사막으로 낙타들이 방목되고 있고, 땅은 메말라 풀조차도 없다. 띄엄띄엄 보이는 몇 채의 집과 방목되고 있는 양과 염소들이 전부다. 차조차도 잘 안 다니는 적막한 도로가 이어진다. 새의 소리도, 어떤 동물의 소리도 없고, 그저 들리는 것은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소리뿐으로 간혹 나를 스쳐 달려가는 트럭의 운전사들은 나에게 경적을 울리며 격려한다.

로랄라이(Loralai)까지 약 70km가 비포장으로 도로포장공사가 한창이다. 먼지구덩이인 비포장도로 위를 천천히 달리는 도중 오토바이를 개조한 소형 세발 택시를 탄 4명의 젊은 사내들이 내 앞을 가로 막는다. 카메라를 내 놓으라는 그들과 대치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중, 갑자기 그들이 큰 소리로 서로에게 뭔가 외치며 세발 차를 타고 도망간다.
순간, 나는 지평선위로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픽업트럭을 본다.
파키스탄의 믿음직한 '하이웨이 패트롤'의 순찰차가 아닌가?! 나는 이 비포장의 길을 빠져 나가기 위해 필사의 질주를 한다.

파키스탄 '하이웨이 패트롤' 경찰의 순찰차 모두는 상황이 일어나면 뛰어내리기 좋게, 픽업트럭이다. 앞에 2명, 뒤에 2명으로 그들의 대부분은 탈레반 전사들처럼 샌달을 신고 임무를 수행한다.
내가 위험지구를 달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나 나를 낚아채, 무조건 내 자전거를 픽업트럭의 짐칸에 쑤셔 박는다. 위험지구를 지나면 또, 나와 내 자전거를 정중히 내려주고는 순식간에 지평선너머로 사라진다. 그들은 진정, 최고의 멋쟁이들이다.

이 비포장의 길을 빠져 나가기 전에 결국 나는 어둠에 걸리고, 검문소의 경찰이 지나는 트럭 한 대를 세우고 내 자전거를 집어 얹는다. '로랄라이'시가 바로 코앞에 있다.
나는 운전사와 조수석의 사내 사이에 끼어 앉아 있다. 말은 전혀 안 통하나 그들은 나에게 아주 친절하다. 놀랍게도 그들은 운전 중 마약을 한다.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입으로 씹어서 한다. 두 친구의 눈은 토끼 눈처럼 빨갛다. 그 동안 많은 파키스탄의 젊은이들을 만났는데 그들 대다수의 눈들이 빨겠다. 그들은 약을 하면서 미친놈처럼 낄낄대기도 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페달을 밟는다.
'로랄라이'시에서 그들은 나를 내려주고 사라진다.
난데없이 나타난 이방인에 온 동네가 야단법석. 모텔 방에 들어가 있어도 동네 사람들의 방문이 계속된다. 이윽고 젊은 매니저가 듬직한 몸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중년의 사내와 함께 나의 방문에 들어선다.
그는 다짜고짜 나의 여행증명서를 보자고 한다. 그는 내 여권과 비자를 보고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후 긴 말없이 사라진다. 그는 정보계 소속 특수경찰이란다. 매니저는 휴대폰카메라로 나를 찍기에 바쁘다.

여관 옆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파키스탄엔 먹거리가 단조롭다. 매 식사마다, 나무화로에서 구워진 단지 밀가루만의 빵인 '짜빠티'와 '달'이라는 수프(주로 콩의 수프거나, 닭고기나 소고기의 수프)가 주요 음식이다. 상도 없이 바닥에 둘러앉아 오직 손으로 빵을 찢어서 수프에 찍어 먹는다. 손으로 먹기에 식당의 방바닥엔 손을 씻기 위한 물병이 놓여있다.
아침을 먹자마자 이번엔 '로랄라이'시의 정복차림의 경찰관이 내 방에 들어선다. 그 또한 내 여권과 비자의 번호를 적어간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친절하고 좋으나 그들의 시선은 내가 가진 모든 물건에 집중된다. 한국에선 하찮은 물건이나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다. 내가 가진 조잡한 파키스탄의 지도까지 달란다. 중국인으로 알고 시큰둥하던 그들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며 환대를 한다. 그들 모두는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
나를 방문한 많은 대학생들은 컴퓨터를 만져보지도 못했고, 대학엔 한 대의 컴퓨터도 없단다.
파키스탄엔 의외로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서로와 불화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뮬탄(Multan)근처에서 야영지를 물색 중, 지방 대(大)호족인 칸(Khan)일가의 초대를 받아 하루 밤을 신세진다. 그들은 파키스탄에서 제일 힘 있고, 돈 버는 오일 비지니스를 한다. 그들은 주유소 뿐 만아니라, 전국의 트럭운송사업까지 장악한다. 그러면서 식당사업도 한다.
왼쪽의 노인은 대(大) 칸 패밀리(Great Khan Family)의 보스이며, 갓 파더(God Father)이다. 오른쪽의 막내아들, 말락(Marak)이 보스 후계자로, 지금 엠비에이(MBA)과정에 있는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보스 옆에는 장전된 A.K47을 손에 쥐고 24시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절대무언(絶代無言)'의 보디가드가 붙어있고, 보스의 베개 밑에는 장전된 모젤 권총이 있었다.

맞바람에 속력을 못 내고 산자위(Sanjawi)를 향하던 중, 도로변에 한 천막을 지난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순간, 천막 뒤에서 갑자기 두 명의 건장한 사나이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사나이는 천막 옆에 서있다.
기골이 장대한 그들 중 한 명이 잽싸게 내 자전거의 뒤에 묶여있던 내 재킷을 채간다.
내가 가진 장비들은 스페어가 전혀 없기에 하나를 잃으면 치명적이다. 재킷을 잃으면 추위와 바람에 무방비로 노출되기에 반드시 지켜야만 될 물건이다.
내 재킷을 채 간 놈은 나로부터 10여m이상 떨어져 빙빙 돌며 나의 애를 태우고, 또 한 놈은 2, 3m 떨어져 빙빙 돌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진퇴양난이다.
내가 만일 자전거를 놓고 내 재킷을 좆으면 그는 내 자전거를 덮칠 것이다. 자전거의 앞 가방엔 카메라가 있다. 손만 넣으면 카메라가 잡힌다. 천막 옆의 한 녀석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나는 내 재킷을 채 간 놈에게 손짓발짓으로 어필을 해 보지만, 그들의 얼굴엔 어떤 표정도 없고 눈은 아주 사나워 보인다. 그들의 제스처로 보아, 그들은 내 모든 것을 원한다. 그가 낚아채간 재킷은 나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건이다. 결코 먹고 떨어져라 하며 포기하며 지나칠 수 없는 물건이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고 저것을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
갑자기 그들이 무언가 소리를 지르며 서두른다.
오랫동안의 정적을 깨며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한 대의 차량을 확인한 나는 필사적으로 자전거를 도로 한 복판으로 끌어당긴다.
급정거한 픽업트럭 속의 중년의 두 사나이는 모두 이 도둑놈들과 같은 족속으로 보인다.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도 사나워 보인다.
오히려, 그 도적놈들이 그들에게 뭐라고 지껄이자 그들은 낄낄대며 웃더니, 나에게 길을 비키라는 듯한 제스처를 쓰며 서둘러 사라진다.

내 나라도 아닌 타국,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안 보이는 사막의 허허벌판 위에서 나는 도적 떼들을 앞에 두고 있다. 고립무원, 이제는 길이 없다. 오직 전쟁뿐! 하지만 저들을 부시고 내 재킷을 되찾는 전술이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드디어, 두 놈이 나를 조여 오기 시작한다. 그들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져 온다. 내 자전거가 그들의 우악스러운 손에 잡혔다. 나는 최후의 순간이 왔음을 감지하고 심호흡을 한다.

멀리 지평선 위로 한 대의 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맹렬한 속도로 달려온다. 나는 그 차를 세우기 위해 자전거를 있는 힘을 다해 끌어당겨 도로 한 복판으로 온다.
'아, 하늘이 나를 돕는 군!' 빽빽하게 손님들이 탄 버스다. 내 앞에서 급정거를 한 버스에서 호호 백발에 흰 수염을 날리며 한 풍채 좋은 노인이 뛰어 내린다. 나는 보디랭귀지로 내 상황을 그에게 설명하자, 그의 얼굴이 흉하게 구겨지며 세 명의 도적놈들을 불러 세우고 한 놈, 한 놈 손가락으로 지적해가며 호통을 친다. 그 노인에게 굴복을 한 그들은 결국 나의 재킷을 돌려준다.
힘겹게 도착한 발로치스탄의 최대도시인 퀘타(Quetta)는 완전 전쟁터가 아닌가?! 모래주머니의 진지가 곳곳에 구축돼있고 주위엔 온통, 장전된 AK 47소총을 든 군인과 경찰들뿐이다.
발로치스탄 지역의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종족계통의 사람들로, 모두들 동양인으로 볼 수 없는, 얼굴의 선이 아주 굵고 체구가 크며 건장하다. 악수를 하면 손들이 완전 돌덩어리에 엄청 크다. 첫 인상에도 호전적이고 강인하며,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냄새가 물씬 난다. 그래서 탈레반이 그렇게 끈질긴 것이 아닐까?
이곳 경찰들도 탈레반과 똑같은 모습으로 맨발에, 가죽샌들이고 어떤 보호 장구 없이 모두 검은 '샬와르 까미즈'-전통복장-를 입고 있다. 그저 양쪽 어깨에 붙어있는 '폴리스(Police)'와 계급장만이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줄 뿐인 그들은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파키스탄의 경찰은 정말 믿음직스럽다.

'퀘타'의 시내를 뚫고 천천히 달린다. 발로치스탄 지역이 제일 빈곤한 곳 같다.
누시키(Nushki)를 향한다. 곳곳의 비포장도로가 나를 괴롭힌다. 풀이라곤 전혀 없고 그저 흙, 모래, 그리고 바위들뿐인 사막지대가 계속된다. 간간히 도로변에 10여채 뿐인 흙집의 마을이 나타난다. 나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마을의 아이들이 도로를 향해 뛰어 나오는 것을 번번이 목격한다. 도로변은 완벽한 벌판이라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수백m 거리에서도 상대가 파악된다. 떼로 몰려들어 무언가 달라고 손을 내미는 그들은 10대에서 20대까지 다양하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저 웃으며 지나가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그대로 끝나지 않는다. 나를 쫓아오며 자전거에서 무엇이라도 낚아채가려고 발악을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그들은 비록 어리지만 10여명이다.

파키스탄의 모든 트럭들은 정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형광물체를 이용해서 치장을 한다.(물론 낮에는 이렇게 아름다운지 모른다.) 이 아름다운 트럭을 몰고 다니는 거의 모든 트럭운전수들은 마약을 하면서 미친 듯이 도로를 달린다.
모슬렘국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藥)을 한다.(왜냐하면 '금주'의 세상이기에 오직 그들의 낙은 피우는 것이다.) 특히, 파키스탄 인들은 심각하다. 많은 이들의 눈이 항상 벌겋다.

발로치스탄 지역에 들어서면서 검문소가 더욱 자주 나타난다. 10km, 20km마다 하나 꼴로 검문소가 있다.
해가 떨어지기 일보직전의 저녁 5시반경, 검문소(Gurengul Check Point)가 나의 앞을 가로 막는다. 그들이 직접 요리한 '달'이라는 날림 '닭고기 스튜'중에서 제일 큰 덩이인 닭다리 하나를 나의 그릇에 먼저 올려놓으며 나를 인정사정 없이 감동을 시킨다. 그들의 노고에 대한 나의 찬사에 마치 어린애들처럼 기뻐한다.

파키스탄인 들에겐 휴대폰이 유일한 즐거움이자 유일한 재산이다. 경찰들도 이 휴대폰으로 나를 찍고 음악을 즐긴다. 헌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 중 대부분이 LG상품이다.

밤에 그들과 괴발개발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중 썩은 트랜지스터를 통해 들리는 긴급뉴스! 일순, 그들 모두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세운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발로치스탄 출신이며 그의 최대정적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뉴스이다.
앞으로 삼사일이면 파키스탄을 빠져 나갈 수 있건만, 하필이면 지금 내가 있는 발로치스탄 출신인가?! 또 다른 비상사태가 아닌가?! 나는 가물거리고 있는 호롱불만의 어두운 검문소 안을 박차고 나와 심호흡을 한다.

나는 또다시 사막을 뚫고 달린다. 마을을 지날 때면 나는 어김없이 필사의 도주를 겪어야 한다. 떼를 지어 달려드는 그들을 피하기 위해 나는 도로를 지나는 차량을 이용 할 수밖에 없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하이에나' 떼를 피하는 방법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약 100m전의 위치에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차를 기다린다.
멀리 같은 방향의 차가 보이기 시작하면 나는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과 속도를 맞추며 달린다. 100m앞에서 진치고 기다리는 하이에나 떼의 바로 앞에서 그 차와 정확히 조우하게끔 속도를 맞추며 그들 앞에서 차에 바짝 붙어 차와 함께 지나가는 것이다.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을 경우엔 단독으로 중앙돌파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무릎관절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페달을 밟아야 한다.

숲이 없는 사막지역에는 우기의 갑작스런 다량의 강수로부터 도로의 유실을 막기 위해 일정간격으로 콘크리트의 수로가 도로의 밑을 지난다.
나는 어둠 속에 나를 감추며 이 수로의 한 곳으로 잠입해 잠을 자왔지만 긴장해 날 잠을 잔다. 바로 옆의 산 너머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밤이면 탈레반 전사들이 이곳을 넘나들고 있다.
긴장감에서 시작된 스트레스성으로 설사와 복통이 계속된다.(네팔과 인도에서 몇 번의 설사로 설사약을 다 먹어버렸다.)먹지도 못하고 누쿤디(Nukkundi), 그리고 국경마을인 타프탄(Taftan)까지의 마지막 길을 달린다.
복통과 함께 기력이 없다. 이젠 페달 질커녕 눈도 뜰 수 없을 지경으로 자꾸 주저 않는다.
국경을 20km남기고 나는 한 조그만 간이식당 앞에서 흙바닥에 그대로 뻗어 버렸다. 누군가가 나에게 티를 권하지만 눈조차 뜰 기력이 없어 그저 흙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다.
비몽사몽을 해매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흔든다.

이를 악물고 일어나 앉아 티를 제대로 한 잔 마시고 나니 정신이 조금 든다. 그는 급수차의 운전사로 급수를 마치고 타프탄으로 돌아간다며 어느새 내 자전거를 급수차의 뒤에 묶는다. 트럭의 조수석에 앉고부터 내 머리의 태엽은 끊겨버린다.
내가 눈을 뜨자, 타프탄의 여관 간판이 나의 눈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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