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연산동 6거리,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에디터 : 박규동


여명을 틈 타 우리는 부산에 상륙하였다.
엄광산에는 구름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날씨가 좋아질 징조다.
밤새 내린던 비도 개였고 기온도 많이 내려 가 새벽 공기가 제법 시원하다. 아래 층 데크로 내려 가 자전거를 끌고 부두에 올라서니 뭔가 제주도 섬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새벽 5시 반이다.
항구의 새벽은 부산하였다. 떠나는 배가 사라지면 다시 그 자리에 다른 배가 접안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거리를 청소하고 있는 미화원 부산아줌마에게 길을 물었다.
"아침식사 하는 식당 어디 없어요?"
부두 서쪽에 있는 식당을 찾아 갔다. 부두 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식사 중이었다. 바로 부두노동조합 사무실이 같이 있는 건물이었다.


"부산에는예, 낮에는 안오고 밤에만 비가 온다 아입니껴! 낮에 비가 와야 시원타 아입니까! 밤에 비오믄 낮에는 구질 구질한 게 습기도 차지예 더 덥다 아잉교! 마, 조심해서 여행 하시소!"
백반을 든든하게 먹고는 식당 아주머니의 너스레를 들으며 식당을 나섰다.
 

2008년 8월 15일, 오늘은
처제와 동서 최서방이 광복절 연휴를 맞아 부산에서 울산까지 우리 부부와 함께 하는 응원 라이딩을 하러 오는 날이다. 의정부에서 아침 첫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 반에 부산에 도착한다고 했다. 낮 1시에 도착 예정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부산 버스터미널은 동래를 지나 양산에 있었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무려 20km가 넘는다. 거리도 멀지만 북적대는 도심의 도로를 횡단하는 게 까마득하여 마음에 걸렸다.

어림잡아 20층은 돼 보이는 건물이 대형 태극기로 덥혀있다.
오호라! 올림픽이 열리고 있단 말이지!

버스터미널을 향해 출발하였다.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부산 운전자들은 자전거를 향해 비켜달라고 경적을 빵 빵 거린다. 담이 좋은 나도 마음이 불안한데 아내는 어떨까 하고 생각하니 슬슬 부아가 난다. 나도 공격적이 된다. 도심의 도로는 갓길이 없고 인도와 차도가 있을 뿐이다. 보통 때에는 도로의 우측 끝단을 타고 가는데 나는 작심을 하고 차선으로 나섰다. 자동차와의 전쟁이다.

오래만에 온 부산도 많이 변했다.
부산시청 앞을 지난다. 어림잡아 20층은 돼 보이는 건물이 대형 태극기로 덥혀있다. 오호라! 올림픽이 열리고 있단 말이지! 요새 부산 야구가 뜨고 있는데 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부산 롯데 선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그래 한 번 믿어 보자!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부산 운전자들은 자전거를 향해 경적을 울렸다.

중앙로를 따라 우리는 북상하였다.
크지는 않지만 고개도 여러 개 넘었다. 연산동 6거리에서는 차들이 길을 내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차선에서 어떤 신호를 받아야 우리가 동래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 아내에게 바싹 따라 오라고 하고는 무작정 교차로 가운데로 들어 갔다. 그리고, 동래쪽으로 향해 신호를 무시하고 냅다 달렸다. 자전거에 트레일러를 달고 주황색 깃발을 날리며 저돌적으로 덤벼드는 우리가 기가 찼던지 모든 차들이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멈춰 서 기다려 주었다.

차량의 소음과 배기는 더위를 더 체감하게 하였다. 무딘 나도 짜증이 일고 실수가 거듭 된다. 어떤 내리막 길에서는 도로 포장이 파도처럼 툴 툴 거려 트레일러에 실려 있던 카메라를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카메라는 다행히도 렌즈 필터만 망가졌고 다른 부분은 이상이 없었다.
덥고 짜증에 지쳐서 구멍가게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옆 골목에서 낮잠을 잤다. 스트레스가 다소 갈아 앉았다.
 
그렇게 전쟁을 치루고 나서 드디어 버스터미널에 도착 하였다.
대합실 출입구 옆에 자전거를 세웠다. 아내는 메트리스를 깔더니 들어 눕는다. 처제가 탄 버스가 도착하자면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점심을 함께 하자고 처제가 버스 안에서 전화를 했다.

그렇게 전쟁을 치루고 나서 드디어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내가 처제를 처음 만난 건 처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내와 나는 연애 중이었다. 아내는 수원에 계신 큰 언니 댁에서 직장을 다녔고 처제도 언니를 보러 온 것이다. 매향리, 고온리에는 전기도 들어 오지 않던 시절이라 전깃불을 보고 눈이 둥그레졌던 처제가 귀여웠었다.
나는 공군 졸병이었지만 처제에게 잘 보일려고 수원에서도 제법 큰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선풍기가 돌았다. 선풍기를 처음 본 처제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처음이라 "밖에 비가 내리나?" 하였었다.
처제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등학교를 우리 집에서 다녔고 서울에 올라 와서는 직장을 우리 집에서 다녔다. 급기야 결혼 때에는 함이 우리 집으로 들어왔고 우리 집 이웃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우리 가족이 된 것이다. 처제는 딸 하나를 두었고 딸 수정이는 알려진 K공대 전자공학과를 다니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나를 따라 자전거를 타게 된 처제와 동서 부부가 드디어 응원군으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 부산에는 만나야 할 친척이 또 있었다. 부산에서 건축설계사로 있는 주승이는 아내와 처제의 외사촌 동생이다. 나는 그가 대학생일 때 만나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는 벌써 50대에 들어 섰다. 아들이 군에 가 있다. 다음 달에 제대하는 아들은 포천에서 근무를 한단다. 우리는 포천에서 자전거로 부산에 오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위의 기사는 개인적인 용도 및 비상업적인 용도의 '퍼가기'를 허용하며, 상업적인 용도의 발췌 및 사진 사용은 저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