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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정이현 기자
사진 : 박창민 편집장 |

현대 사이클링 산업에서 자전거 안장은 라이더와 자전거가 교감하는 세 가지 주요 접점(핸들바, 페달, 안장) 중 가장 결정적이고 민감한 요소로 평가받는다. 라이더의 체중 대부분을 지탱하는 동시에 동력 전달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하이엔드 안장 시장은 3D 프린팅 기술의 도입으로 급격한 기술적 진보와 시장 재편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필연적으로 제품의 중량 증가와 가격 상승이라는 중대한 부작용을 수반하며, 순수하게 경량화와 직관적인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레이서들에게는 기술적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이러한 시장의 과도기적 흐름 속에서 피직이 새롭게 발표한 'R1 Light(알원 라이트)' 라인업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R1 Light 플랫폼은 복잡한 3D 프린팅 기술이나 다중 레이어 구조를 과감히 배제하고, 안장의 본질적인 기능과 소재의 순수성에 집중하는 '백 투 베이식(Back-to-Basics)' 철학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피직의 브랜드 매니저인 알렉스 로카텔리(Alex Locatelli)의 언급처럼, 이 플랫폼은 수십 년간 축적된 안장 설계의 경험을 바탕으로 불필요한 모든 것을 제거하고 오직 퍼포먼스에 필수적인 요소만을 남긴 결과물이다.
소재의 특성을 최적화, 17~20% 경량
피직 R1 Light 라인업의 혁신은 단순히 기존 부품의 크기를 줄이거나 형태를 축소한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각 구성 소재의 물리적, 화학적 물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이루어낸 소재 공학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이 플랫폼은 크게 세 가지 핵심 레이어인 커버리스 로우 EVA 패딩, 카본 강화 나일론 쉘, 그리고 초강성 카본 레일로 구성되며, 각각의 층위는 특정 응력 분산과 승차감 요구사항에 완벽하게 대응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세 가지 혁신적인 소재와 구조적 미니멀리즘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피직은 R1 Light 안장을 기존 R1 라인업 대비 무려 17%에서 최대 20%까지 무게를 덜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잉여 구성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고 필수적인 기능만을 남긴 결과물로, 장시간 이어지는 빠르고 가혹한 라이딩 환경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미니멀리즘 설계를 통해 성능을 유지하면서 120g대 안장을 완성했다.
커버리스 인젝션 로우 EVA 패딩
R1 Light 라인업을 시각적, 기술적으로 가장 차별화하는 두드러진 특징은 전통적인 안장 외피(Microtex 등 합성피혁 커버)와 접착 층을 완전히 제거한 '커버리스(Coverless)' 구조의 채택이다.
수십 년간 안장 제조 공정에서 당연시되어 온 외피와 화학적 접착제를 과감히 제거함으로써 즉각적이고 유의미한 중량 감소가 이루어졌으며, 그 표면은 사출 성형된 로우 EVA 폼이 직접 대체하게 되었다.
별도의 커버 없이 EVA 폼 만으로 패딩을 제작한 커버리스 구조
이 특수 배합된 사출 성형 EVA 패딩은 폴리우레탄 기반의 전통적인 폼보다 밀도가 현저히 낮으면서도, 라이더의 하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높은 반발 쿠션을 제공한다.
가공되지 않은 순수 다공성 EVA는 우천 시나 라이더의 땀에 의한 수분 흡수에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피직은 정밀한 온도와 압력 제어를 동반한 폐쇄 셀(Closed-cell) 기반의 특수 사출 성형 공정을 통해, EVA 패딩의 외부 레이어는 얇고 치밀한 자체 피막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별도의 발수 코팅이나 무거운 가죽 커버 없이도 내부로의 수분 침투를 차단하고 장기적인 내구성을 확보하였다.
쉘과 패딩을 직접 접착한 미니멀리즘으로 무게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역학적 이점은 커버가 배제된 노출형 EVA 폼 구조가 라이더에게 극도로 높은 표면 마찰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매끄러운 합성 가죽 커버는 빗물이나 땀에 젖었을 때 슬립 현상을 유발하여 페달링 효율을 저하시키는 반면, R1 Light의 거친 EVA 표면은 라이더가 안장 위에서 높은 토크로 페달링을 수행할 때 골반이 원치 않게 앞뒤로 미끄러지는 현상을 억제한다. 이는 라이더가 자세 유지를 위해 코어 근육을 낭비하는 것을 막아주어, 동력 전달 효율을 높인다.
패딩 구조의 두께를 증가시키지 않는 로우 프로파일(Low-profile)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이토록 안정적인 지지력을 확보한 것은 경량화와 퍼포먼스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적인 공학적 타협이라고 볼 수 있다.
마찰력이 높아진 EVA 표면 덕분에 안장 위에서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이 수월하다.
카본 강화 나일론 쉘
하이엔드 레이싱 안장의 베이스(Shell) 설계에 있어서 풀 카본 소재의 사용은 흔히 최고의 성능을 대변하는 척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피직은 R1 Light 라인업에서 절대적인 강성만을 추구하는 풀 카본 쉘 대신, 최적화된 혼합 비율의 카본 섬유가 보강된 나일론 복합소재(Carbon-reinforced nylon shell) 쉘을 채택했다.
얇은 패딩에서 부족한 승차감을 향상시키면서 가격에도 유리한 카본 나일론 쉘을 채택
초고강성의 풀 카본 쉘은 페달링 파워의 손실을 0에 가깝게 억제하는 장점이 있으나, 순응성이 거의 없어서 거친 아스팔트나 미세한 요철에서 발생하는 고주파 노면 진동을 라이더에게 여과 없이 전달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특히 R1 Light 플랫폼과 같이 폼의 두께를 최소화한 미니멀리스트 설계에서는 쉘 자체가 서스펜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라이더의 근육 피로도가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반면 카본 강화 나일론 쉘은 플라스틱 폴리머가 지닌 본연의 점탄성(Viscoelasticity)과 카본 섬유의 인장 강도가 결합하여, 순응성이 휠씬 높아진다. 이는 불규칙한 노면에서 안장의 윙(Wing) 부위가 라이더의 페달링 스트로크에 맞춰 미세하게 휘어지며(WingFlex 특성과 유사) 충격을 감쇄시키는 순응성 효과를 극대화한다.
즉, EVA 패딩의 얇은 두께에서 기인할 수 있는 승차감 저하 우려를 쉘 자체의 동적 유연성으로 상쇄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완성한 것이다.
안장 윙 부분이 페달링에 따라 충분한 순응성을 제공하는 등 정교한 설계가 적용되었다.
부위에 따라 강성과 순응성의 균형을 맞춘 쉘 구조
초강성 브레이디드 카본 레일
플랫폼의 하부 구조를 지탱하며 자전거의 시트포스트와 결합하는 부위에는 초강성 브레이디드 카본 레일(Braided Carbon Rails)이 적용되었다. 스틸이나 티타늄(K:ium) 레일을 사용하는 하위 등급의 모델들과 달리, R1 Light의 카본 레일은 안장 전체의 총중량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반응성을 극대화하는 핵심 골격이다.
브레이디드 카본 레일로 경량 및 강성을 만족시켰다.
레일의 단면 형상을 살펴보면, 수직 방향으로 9mm, 수평 방향으로 7mm인 타원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카본 섬유의 가장 큰 약점인 국부적인 압착 파손 위험을 크게 낮추는 이점을 지닌다. 다만, 이러한 타원형 카본 레일을 장착하기 위해서는 라이더의 시트포스트가 상하로 체결되는 구조이거나, 좌우 사이드 클램프일 경우 7x9mm 전용 어댑터로 교체해야 하는 기계적 호환성 확인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7x9mm 레일을 고정할 수 있는 시트클램프가 필요하다.
안장 모델별 비교
자전거 안장의 형태는 라이더의 골반 유연성, 라이딩 스타일, 주행 환경, 그리고 자전거의 지오메트리에 따라 맞추어야 한다. 피직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안장을 창조하는 대신, 수십 년간 프로 펠로톤과 글로벌 시장에서 수백만 번의 마일리지를 통해 검증된 자사의 4가지 아이코닉한 주요 안장 모델에 새로운 R1 Light 아키텍처를 이식하는 현명한 전략을 취했다.

Vento Antares R1 Light (벤토 안타레스)
안타레스(Antares)는 지난 20여 년간 모든 그랜드 투어(Grand Tour)의 험난한 스테이지에서 숱한 우승을 이끌어내며 프로 펠로톤의 사랑을 받아온 피직의 가장 상징적이고 다재다능한 레이싱 안장이다.
안타레스 R1 Light는 좁은 노즈(코)에서 넓은 윙(날개)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급격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넓어지는 테이퍼링 설계를 채택하고 있다.
벤토 안타레스 R1 Light
이러한 유선형 설계는 라이더가 페달링을 할 때 허벅지 안쪽이 안장의 모서리에 마찰되는 간섭 현상을 최소화한다.
생체역학적으로 안타레스는 척추 유연성이 중간 정도인 라이더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안장 표면이 비교적 평평하면서도 넓은 지지면을 제공하여, 라이더가 필요에 따라 골반을 살짝 눕혀 에어로 포지션을 취하거나, 오르막에서 골반을 세우고 넓은 날개 부위에 앉아 파워를 내는 등 다양한 포지션 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한다.
실측무게는 폭 140mm 모델 기준 126g, 150mm 모델 기준 128g이라는 놀라운 초경량을 달성하여, 중력을 거슬러야 하는 가파른 업힐과 즉각적인 가속이 필요한 로드 레이싱 환경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반응성 높은 라이딩 피드백을 전달하는 모델이다.
넓이 150mm(왼쪽)와 140mm 사이즈로 출시된다.
150mm 실측 무게는 128g
140mm 실측 무게는 126g으로 측정되었다.
안타레스는 노즈 부분의 폭이 좁게 이어지기 때문에, 강렬한 페달링에도 간섭이 적고 체중 이동이 수월하다.

Vento Argo R1 Light (벤토 아르고)
아르고(Argo)는 현대 사이클링 안장 설계의 가장 큰 트렌드인 숏노즈(Short-nose) 스타일의 모델로, 공기역학적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격적인 자세를 선호하는 라이더를 위해 탄생했다. 전통적인 안장보다 코가 유의미하게 짧게 설계된 아르고는 피직 라인업 중 가장 다목적으로 활용되는 현대적인 실루엣이다.
벤토 아르고 R1 Light
아르고 R1 Light는 코를 짧게 자르고 안장 중앙에 넓고 넉넉한 컷아웃(Central cut-out) 구조를 배치함으로써 안장과 만나는 회음부의 연조직 압박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특징이다.
더불어, 가파른 시트 튜브 각도를 지닌 현대적인 레이싱 바이크의 지오메트리와 조화를 이룬다. 아르고를 사용하는 라이더는 안장 위에서 위치를 앞뒤로 자주 이동하기보다는, 골반을 단단히 고정한 하나의 최적화된 포지션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출력을 쏟아내는 타임 트라이얼(TT)이나 독주 상황에서 최고의 안정성과 퍼포먼스를 경험할 수 있다.
140mm 사이즈의 실측 무게는 153g
짧은 코와 넓은 컷아웃 채널을 통해 공격적인 자세에서 유리하다.

Tempo Aliante R1 Light (템포 알리안테)
2003년 처음 출시된 이후 장거리 사이클링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알리안테(Aliante)는 특유의 유려한 물결 모양 프로파일을 특징으로 한다. 이 곡선 형태의 설계는 척추와 골반의 유연성이 다소 부족한 라이더가 요추를 구부려 에어로 자세를 취하려 할 때, 뒤쪽으로 치솟은 안장 꼬리 부분이 골반을 뒤로 밀리지 않게 단단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돕는다.
템포 알리안테 R1 Light
장거리 주행에서의 승차감에 초점을 맞춘 모델인 만큼, 알리안테는 R1 Light 특유의 하이퍼포먼스 경량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압력 완화를 위한 중앙의 컷아웃(Pressure-relieving cutout)과 넓고 든든한 날개를 통해 하중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킨다.
거친 도로나 장거리 그래블, 혹은 하루 종일 이어지는 그란폰도와 같은 긴 라이딩 환경에서 하부 요추와 골반 근육의 피로도를 획기적으로 낮추도록 고안된 지구력 중심의 명작이라 평가할 수 있다.
145mm 폭이 147g, 155mm 폭이 149g의 무게를 지닌다.
155mm 사이즈의 실측 무게는 149g
145mm 사이즈의 실측 무게는 147g
라이딩 포지션에 따라 엉덩이를 지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커브가 특징이다.
라운드형 베이스로 장시간 라이딩 시 허리 통증이 적고, 깊은 컷아웃 채널이 설계되었다.

미니멀리즘으로 얻은 성능과 가벼움
최근 수년간 글로벌 사이클링 산업과 소비자의 시선이 3D 프린팅이 가져다주는 미래지향적인 외관과 가변 밀도 기술의 화려함에 매몰되어 있을 때, 피직은 오히려 거품과 복잡함을 덜어내고 본질적인 소재의 특성에 집중하는 '구조적 미니멀리즘'으로 회귀하여 120g대라는 믿기 힘든 결과를 도출해 냈다.
기존 피직 안장의 성능과 가벼운 무게를 동시에 만족하는 R1 Light 라인업
이는 혁신적인 퍼포먼스가 반드시 가장 비싸고 새로운 첨단 제조법에서만 도출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며, 기존 소재들의 물성을 깊이 이해하고 결합하는 최적화 능력이 여전히 제조사의 가장 강력한 핵심 역량임을 증명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특히, 기존에 피직 안장을 사용하던 라이더는 자신의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약 20%의 안장 무게를 줄이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마찰 역학 최적화를 통한 궁극의 페달링 효율성 향상은 웬만한 에어로 효과보다 든든한 물리적 이점으로 작용한다.
피직 R1 Light 라인업은 강성, 폭발적인 반응성, 한계에 도전하는 경량화, 그리고 타협 가능한 경제성이라는 4가지 핵심 가치 사이에서 뛰어난 균형을 이룩한 플랫폼으로, 순수한 성능을 찾는 라이더들에게 합리적인 엔지니어링 무기가 될 것이다.
관련 웹사이트
세파스: https://cephas.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