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친절, 쿠남블 사람들
에디터 : 박규동

1996년 9월 2일(月)     양털 창고(쿠남블 45km전)
                   왈겟 → 워링턴 농장

2℃ 아침식사 식빵,계란후라이,된장국
08:30왈겟에서 출발
09:20휴식 파워바
11:20휴식 오렌지쥬스
12:20-13:15점심식사 쉼터 왈겟 42km후방 스테이크,식빵,계란후라이,된장국(보온병)
14:07휴식
15:15휴식 오렌지쥬스 15.5℃ 구름
16:15휴식 비내리기 시작
16:30워링턴농장에 찾아가 양해를 얻고 양털 깎는 창고에 캠프
남위:30°36.4′동경:148°13.0′
농장으로 식사초대 받음 닭고기,감자요리,콩,레몬쥬스

최고속도17.2
평균속도13.1
운행시간5.31.57
주행거리72.68
누적거리823.5

모텔에서 자고 나면 텐트에서 잔 날보다 운행이 제법 힘을 받는다. 습하고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낮 4시까지 많은 거리를 달려왔다.

16시경, 비바람이 몰아쳐서 도저히 운행을 할 수 없어서 캠프할 곳을 찾던 중, 때 마침 길가에 농장을 발견하였다. 무작정 농장으로 달려 들어 갔다. 농장주는 우리가 농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대뜸 창고로 가라고 신호를 한다. 농장주의 호의로 창고를 사용해도 좋다고 하기에 창고 안에 텐트를 쳤다.
집 안에 텐트를 지었으니 얼마나 따뜻한가 말이다. 쿠남블(Coonamble) 전방 45km. 워링턴(Warrington)농장에서 지어놓은 양털 깎는 창고 안에서 캠프를 한 것이다.

농장주는 지금 집을 수리 중이라서 기거할 방이 없다고 미안해 하였다.

저녁에는 또 만찬을 초대받아 농장 가족들과 식사하며 대화도 할 수 있었다. 따뜻한 대화와 그 가족의 몸짓들을 잊을 수 없겠다. 그리고 나의 미국식 영어보다 창민이 대장의 영국식 영어 발음을 그들이 퍽 좋아하는 눈치였다. 쓸려고 준비해 두었던 면으로 만들어진 스카프 두 장을 선물했다.


번하임 가족
농장주 빌 번하임(Bill Burnheim)씨는 다섯 식구, 쌍동이 12살짜리 남자 아이들은 벌써 시드니로 유학 공부 갔고, 9살짜리 딸 케이트와 셋이서 살고 있었다. 부인은 초등학교 선생님. 농장에서는 주로 밀을 재배하고 있었는데 엄청나게 넓어 보였다. 또한 양과 소를 키우는데 양과 소는 큰 소득이 없다고 한다.

번하임부인의 결혼 전 이야기가 재미 있었다. 세계 각지를 배낭 여행하던 그녀의 이야기 도중에, 나도 가 보았던 지역이 나오면 함께 그 곳 이야기에 흥이 났었다. 알라스카, 캘리포니아, 샤모니 알프스, 그랜드캐년, 뉴질랜드...

오늘은 태풍의 후미에 놓였던 것 같다. 풍경은 매일 똑같은 모습이 반복된다. 도중에 소떼들을 만났고 곳곳에 여러 마리가 죽어 나 딩구는 것을 보았다. 말떼들, 양떼들, 새떼들 이런 풍경의 연속이었다.

양을 차에 태우는 모습. 개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짙게 드리운 비구름 사이로 틈을 비집고 저무는 해를 바라 볼 수 있었다.
노을은 지혜로운 노인의 기품을 닮아 있다.
창고의 양철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참 좋게 들린다.
남서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비 바람이 언제쯤 멈추게 될지?
모른 체 하고 따뜻하게 잠이나 자야겠다.


9월 3일(火)     콤바라(Combara)의 스완스보로우씨 댁에 초청객으로 머물다.
              워링턴 농장 → 쿠남블 → 콤바라

07:20 4℃ 아침식사 식빵,계란후라이,스테이크,된장국
07:40농장에서 출발
08:30휴식
09:30휴식 오렌지쥬스
10:13휴식 강한 맞바람
10:52휴식 파워바
12:07휴식
12:30-15:00쿠남블(Coonamble)점심식사 테이크어웨이식당 스테이크 샌드위치,감자칩, 콜라
신문기자의 인터뷰 점심식사비 $5.80
구입품 스테이크 $4.12 식빵 $1.38 레몬쥬스 $3.55 계란 $2.65 버터 $2.16 WD40 $3.59 깃발 $19.90
15:50휴식 파워바
6:40휴식 레몬쥬스 기어와 페달에 윤활유 뿌림
17:00 콤바라(Combara)의 한 가정집에 초대되어 숙박하게 됨.
남위:31°07.4′동경:148°22.4′
저녁식사 양고기,감자,펌프킨,콩,오렌지쥬스

최고속도18.8
평균속도11.9
운행시간5.55.0
주행거리70.73
누적거리894.2

쿠남블 사람들의 호의와 친절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제 머물렀던 빌 번하임씨네도 그랬었고 경찰서, 우체국, 상점, 신문기자 모두 친절하다. 호주에 가면 쿠남블 사람들을 만나 보라고 전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우호적이며 친절할 수 있는지?
내륙으로 들어오면서 그런 인정들은 점점 더해만 가는 것 같다.
쿠남블의 경찰서에서 도로사정과 기상 관계를 알아보았다. 친절한 경관은 콤바라를 거쳐서 질러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80km를 줄여 갈 수 있다니!

우체국 직원들은 우리가 가야할 워렌(Warren)으로 팩스전송을 보내고 받고 하며 그 곳의 기상정보를 모아서 전해준다. 당분간 바람은 불겠다고 한다. 대체로 겨울에는 남풍이 불고, 여름에는 북풍이 분다고 한다. 봄에는 전환기라서 서풍도 섞여 부는가 보다. 여러 사람들이 우리의 선택을 돕기 위해 바람에 대한 정보를 준다. 아주 이례적으로 이렇게 바람이 불고 춥다는 사람, 9월 한 달은 남서풍이 연례적으로 불어왔다는 자전거 타는 노인. 구구 각각 이기는 해도 그 친절에 인정이 묻어 난다.

포목점에 들렸다. 바람에 날아가 버린 깃발을 새로 만들려고 밝은 주황색 천을 사기 위해서였다. 마땅한 천이 없어서 이리저리 찾고 있는데 여자점원이 다가왔다.
무엇을 찾고 있느냐?
밝은 주 황색 천을 찾는다.
어디에 쓸려고 하느냐?
깃발을 만들려고 한다.
무슨 깃발인데 주황색이냐?
자전거 뒤에 다는 안전 깃발이다.
아! 그거 어디에서 본 것 같다, 잘 기억 해 보아라, 생각 난다 날 따라 와라.
그 예쁜 여자를 따라 길을 건너고 얼마를 더 가니 어린이용 자전거 판매점이 있었고 그 곳에서 새 깃발을 살 수 있었다. 그 깃발을 사고 내가 만족해 하는 것을 보고서야 그녀는 자기네 상점으로 돌아 갔다.



쿠남블 사람들의 관심과 호의는 이곳 콤바라까지 이어진다. 길간드라로 가는 55번 하이웨이에서 지름길로 우회전하여 3km가량 오면 '콤바라'라는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
저녁 다섯 시 쯤,그 마을을 지날 때였다. 마침 개와 함께 한가롭게 저녁 시간을 산책하고 있는 40대의 한 여인을 만났다. 얼른 보기에도 이목구비가 세련된 미인이다. 우리는 숙박할 곳을 찾는다고 물었고, 그녀는 숙박시설이 이 곳에는 없지만 괜찮다면 자기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대뜸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스완보로우 가족
도움을 주는 일에는 따지고 재고 하는 게 없는 것이 이곳 쿠남블 사람들의 성미인 모양이다. 너무 고맙고 반갑다고 인사하고 우리는 그녀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저녁에는 양고기 요리를 해주었고 모처럼 샤워도 할 수 있었다. 샤워의 상큼한 느낌이란! 그리고 물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이나 고등학생 아들 모두 시원 시원하다. 진심으로 반갑게 맞아 주는 느낌이었다.

워렌까지는 남서 쪽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내일도 바람은 거세게 불 것이다. 3급 도로이지만 어렴풋이 포장은 되어 있어 다행이다. 중앙선도 갓길 표시도 없는 좁은 도로이다. 워렌까지는 86km, 바람만 아니면 쉽게 갈 길이지만 바람이 불어서 어떨지 모르겠다.

호주에는 개들이 참 많다. 내륙으로 가면 갈 수록, 특히 농가에 가면 개가 많다. 집에서 키우다가 야생이 된 들개 딩고까지 합치면 사람들보다 개가 더 많은 건 아닐까?
그런 개들이 모두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있다. 개가 사람에게 나누는 우정, 신뢰, 충성을 볼 수 있었다.
어제 양털 창고에서 머무를 때에 마침 양을 트럭에 싣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양몰이 개들의 역할이란 참으로 영특하고, 적절하다는 것을 느꼈다. 트럭의 짐 칸은 4층이었는데, 큰 트레일러였다. 트럭에 까지 올라가 2층에서 3층으로, 다시 3층에서 4층으로 양들을 몰아가는 개들의 솜씨는 장인의 기술 같았다.
집을 지키고, 집들이 모두 몇 십Km씩 흩어져 있으니까, 양몰이를 하고,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래서 그런가 개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도 이 곳 개들과는 잘 사귀고 있다. 개들도 우리에게 우호적이다.


아침에 기온이 4℃까지 내려갔다. 겨울로 되돌아 가는 것은 아니겠지? 날씨가 추워지면 텐트에서의 잠은 춥고, 피로 회복이 더디고, 요리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스완스보로우씨 댁에서 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따뜻한 물 침대에 자게 되다니. 행복한 밤이다.

꽁무니차 트레일러 뒤에는 1.5m 높이의 깃대와 그 위에 주황색 삼각 깃발이 날리고 있다. 이 깃발은 안전을 위한 것으로 먼 곳에서 차량이 쉽게 우리의 행동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안전표시이다.
그런데 오늘의 바람으로 그 깃발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쿠남블의 장난감 가게 토이월드에서 새 깃발을 두개 구입해서 다시 달았다. 이 깃발은 우리의 상징이 될 것이다.
잃어버린 깃발에는 '브리즈번에서 퍼스까지'가 쓰여져 있었다. 1,000km나 함께 달려와서 정이 들었었는데 잊어버리다니!


새로 산 깃발에도 각각 글을 써 넣었다.
"브리즈번에서 퍼쓰까지(Brisbane to Perth)"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Pacific to In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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