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8~09/01
외나로도의 우주과학관과 로켓
2009-09-09   박규동

자전거여행에 빠지면 달리는 게 약이다.
달리지 않으면 병이 난다. 내리막이 행복이라면 오르막은 고통이다. 이 고통조차도 즐겨야 한다. 등골을 타고 내리는 땀줄기의 흐르는 느낌이 좋아져야 한다. 지금처럼 더운 공기에 습도까지 높으면, 공기 대신에 수증기로 호흡하는 것 같기도 하다. 코만으로는 호흡이 어려워 늘 입과 함께 호흡을 해야 한다. 목이 컬컬해진다. 그 허름한 목소리도 좋아지고 익숙해진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바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달리지 않으면 그 고통이 다시 그리워진다.
고통이 약이 되는 것이다. 그게 자전거여행이다.

윤구가 황산 할머니 집의 문을 고쳤다.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잘 열리고 닫히지 않는 대청마루의 미닫이며 안방 문을 뜯어서 자전거용 윤활유로 기름도 치고 벌어진 틀의 아귀를 끼어 넣고 하니 문이 훨씬 좋아졌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찬밥이 남았는데도 할머니는 아침에 새 밥을 지었다. 손에게 헌 밥을 대접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고흥반도에서 건너다 보이는 나로도

아내는 외나로도에 함께 가지 않겠다고 꾀를 부렸다. 남자들 셋이서 갔다 오란다. 트레일러를 할머니 집에 풀어놓고 카메라와 응급용품만 배낭에 넣었다. 넉넉잡아 3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흥반도 남쪽에서 내나로도를 건너 외나로도가 있었다.
황산마을에서부터 거리는 약 30km로 짐작했다. 내나로도입구까지는 길이 평탄하였다. 트레일러를 떼어낸 기운으로 신나게 달린 것이다. 내나로도부터는 평지가 없었다. 나로2대교를 건너 외나로도를 접어들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졌다. 다짜고짜 대문이 열려 있는 어느 가정집으로 들어갔다. 놀란 가족들에게 비를 피해서 처들어왔다고 하니 양해를 해 주었다. 소나기는 30분이나 쏟아졌다.
아스팔트의 열기에 위에 내린 소나기는 수증기같은 바람을 만들었다. ㅆ자 고개는 끝없이 나타났다. 마지막 고개는 힘이 들어서 그런지 흡사 미시령을 오르는 것 같았다. 땀으로 샤워를 했다. 다시 돌아서 올라올 생각을 하니 내리막 길조차도 즐겁지 않았다. 외나로도 우주과학관 광장까지는 거의 3시간이나 걸렸다. 집을 떠날 때의 호기로는 지금 시간에 다시 집에 도착했어야할 시간인 것이다. 무엇엔가 크게 속은 것 같아 은근히 화가 났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다짜고짜 대문이 열려있는 어느 가정집으로 들어갔다.

고개는 끝없이 나타났다. 마지막 고개는 힘을 들어서 그런지
흡사 미시령을 오르는 것 같았다.

나로2대교에 걸린 만국기, 러시아기가 보인다.

내나로도와 외나로도 사이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있었다.

발사대는 보이지 않았다.
우주선 발사장으로 가는 마지막 길은 멈춤대를 걸처놓고 아무나 통행을 할 수 없도록 통제를 하고 있었다. 주차장과 우주과학관 건물과  로켓모형이 광장에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나로호와 겉 모양이 똑 같다는 로켓모형 앞에서 증명사진을 찍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온 것인데 로켓의 실물을, 아니 발사대조차도 직접 볼 수 없다니 또 한번 스스로에게 속은 기분이 들었다. 빠진 기운에 마음까지 상했다.
나그네님이나 윤구도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자전거로 갈 수 있는 데까지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겨우 분이 갈아앉았다.
우리가 처음 발사하는 우주선 나로호에 대한 일반 국민의 관심이 높아서인지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 있었다. 버스가 주차장에 가득하다.   
김영삼정부 때부터 시작한 우주산업이 러시아와 합작으로 이뤄진 건 여러모로 궁금한 게 많았었다. 미국이나 일본이 우주관련 기술의 이전에 반대하여 우리와 손 잡을 생각이 없을 때 우리 정부는 과감하게 적성국가였던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에 러시아의 경제가 어려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러시아에 많은 돈을 빌려주었던 것이다. 자동차와 항공기 그리고 우주 기술까지 갖출 수 있다면 우리는 기술 선진국이 될 것이다. 이번 발사가 성공하여  우리나라도 우주관련 기술을 보유할 수 있는 든든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쵸코파이 등을 먹었다.
넘어야할 고개를 생각하여 에너지를 채워야 했다. 간식을 먹으며 한편으로는 섬을 자동차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하여 의논을 하였다. 다니러 왔다가 나가는 빈 트럭이 있다면 사정을 해서라도 섬을 빠져나가자는 것이다. 윤구가 먼저 나가서 섭외를 하기로 하였다. 화장실에 들렸다가 주차장으로 가는데 윤구가 밝은 얼굴로 엄지를 세워 보인다. 주차장 초입에 세워져 있던 1톤 트럭이 우리를 태워주겠다고 하였단다.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우리는 바닥에 넓죽 앉았다. 나로1대교를 건너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한 시간을 더 달려 황산 할머니 집에 도착하니 낮 두 시가 넘었다.

진짜 나로호와 겉 모양이 똑 같다는 로켓모형 앞에서 증명사진을 찍었다.

저 산 뒤로 발사대가 있다. 천신만고 끝에 왔는데 발사대도 볼 수 없었다.

빈 트럭이 있다면 사정을 해서라도 섬을 빠져나가자는 계획을 세웠다.

황산 할머니! 건강하십시오!!

황산 할머니 댁에서 접심까지 얻어 먹고 벌교를 향해 출발하였다.
오늘 저녁에는 너구리님이 벌교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15번도로를 타고 벌교에 이르니 사위가 어두어지기 시작이다. 벌교남초등학교에 텐트를 칠 요량을 하고 우선 너구리님을 만났다. 너구리님은 건설사 임원으로 구미에 있는 현장에서 별교까지 부인과 함께 차로 왔다.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너구리님의 제조로 소주와 맥주를 적당히 비벼서 마시고 별교 특산의 회도 먹었다. 벌교꼬막이 달큰했다.
윤구가 흥이나서 술 마시는 모습은 아이처럼 좋아 보였다. 너구리님과 나그네님도 한 술 했다. 너구리님이 몰고온 호탕한 분위기는 여행에 찌든 우리의 기분을 시원하게 바꿔 주었다. 고마워요, 너구리님!
얼콰한체로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쳤고 너구리님은 내일 아침에 만나서 함께 라이딩을 하기로 하였다.

텐트를 치고 자리를 깔고 있는데 학교의 보안담당자가 오더니 텐트를 철수하란다.
운동장이 인조잔디로 되어 있어서 관리상 야영은 안된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50m 밖에 있는 마을의 정자로 옮겼다. 마침 정자가 넓어서 텐트 3동을 정자 위에 칠 수 있었다. 옆에 있는 마을 노인회관에 수도꼭지가 밖으로 나와 있어서 물도 얻어 쓸 수 있었다.

한참 잠에 빠져있는 밤 12시 즈음이다.
술에 취한 남자가 정자를 지나다가 우리 텐트를 발견하고는 목청이 터질 듯 큰 소리로 주정을 했다.
" 엉! 누가 텐트를 세 개나 쳤어! 엉!"
"텐트 장사가 왔어! 엉! 이장이 돈 먹었어! 엉!"
대 들지는 않았지만 바로 험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하지말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웃음같은 걸 꾹 참고 10여 분을 보내자 그는 어슬렁 어슬렁 골목을 따라 사라졌다.
잠은 달았다.

어제는 78km, 오늘은 98km를 달렸다.

술에 취한 남자가 정자 옆에서 목청이 터질 듯 주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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